선·점·얼룩의 조화로 자연연상|호암갤러리 「윤명노 회화전」을 보고…정병관<미술평론가·이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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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어떤 개인전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관객에게 감동을 주게 마련이다. 그러나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윤명노 회화전은 특별한 감동을 야기시킨다. 넓고 고급스런 전시공간에 알맞게 작품 또한 크고 장엄하고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유화물감·아크릴·크레용 등 여러 가지 재료와 도구, 붓놀림과 흘리기·얼룩 등 다양한 기법으로 창안한 청색이 깃들인 흑백 추상화는 수묵산수화를 연상시킨다.
산과 암석, 계곡과 흐르는 물을 연상시키는 추상형태-붓 자국의 반복에 의해 형성된-의 입체 또는 평면, 선과 점들은 추상적인 안견의 『몽유도원도』처럼 관객의 시선을 이리저리 화면 구석구석까지 끌고간다.
사실 작가가 어렸을 때 본 함경도 개마고원이나 금강산 품경 등의 추억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50∼60년대에 네덜란드 출신작가 드 쿠닝이 그렸던 추상풍경들은 평면적 공간이며 구도가 단순하고 필치는 격렬했다. 그러나 윤명노의 『익명의 땅』시리즈 추상 산수는 입체적인 공간의 성질이 두드러지고 명암과 원근표현 등 전통적인 화면 처리와 세련되고 복잡한 화면 구성에 의해 그림속에 「시간성」이 도입된 그림이라 말할 수 있다.
화면구성의 묘미와 입체적 공간에의 복귀는 작가 자신이 과거 30년간에 걸친 전위적 회화(60∼70년대의 『균열』시리즈, 80년대의 『얼레짓』시리즈)를 통해 화면의 평면화와 단순화, 구도를 없앤 전면회화를 계속 추구해온 것에 비교하면 전통적 회화가치에로의 복귀를 보여준 것이 된다.
원래 순수추상화에서는 자연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화면에 남아서는 안되며, 따라서 자연에서 출발해 사물이나 풍경을 그리면 소위 반추상적인 그림이 되었었다.
윤명노의 이번 작품들은 입체걱인 바위나 산기슭·계곡물 같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추상형태와 선·점·얼룩들이 있으나 자연이 아니라 추상에서 출발해 자연연상형태에 이르는 정반대의 과정을 밟았으므로 반추상화가 아니라 반구상화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구상성보다 입체적 공간감이 현저하므로 반입체화된 그림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얼레짓』시리즈의 평면화된 화면들은 현재 그림들과 비교하면 허탈해 보이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시대적 회화 조류에서 볼 때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제 『얼레짓』에서 사용된 짧은 직선들은 감소되거나 없어지고 강하고 넓고 굵은 직선과 곡선들이 교차된 화면을 구성하지만 아직도 명상적이며 정적이 지배하는 추상풍경으로 고전적인 고요함이 깃들여있다. 초기의 단순함과 직선적인 선의 사용, 평면적 공간이 고전적이라면 출렁거리는 운동감이 있는 현재의 그림은 바로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크가 고전적인 미니멀리즘 미술조류 이후에 올 수 있는 대체경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윤명노 회화전은 예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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