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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방광암(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오랜 기간 한 환자를 돌보다보면 한 식구 같이 느껴질 때가 있고 주변의 이모저모까지 속0속들이 알 수 있게 된다.
L여사(75)는 국민학교 선생님으로 40여년간 봉직하다 10년전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분이다.
코흘리개들과 한평생을 살아온 이분에게 그 못된 암이 왜 찾아왔을까.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한창 뛰어 놀다 소변을 보는데 변기가 붉게 물들어있었다는 것이다. 혈뇨가 나온 것이다.
L여사는 겁이 덜컥 나 나를 찾아왔었는데 그것이 15년전 가을 바로 이때 쯤이다.
비뇨기과적 기본검사를 거쳐 내시경으로 방광을 들여다보니 방광 왼쪽 점막에 콩알만한 암이 자라고 있지 않은가. 표재성 방광암 초기였다.
아이들 밖에 모르는 순진한 이 선생님에게 차마 암이란 말은 할 수 없어 아주 나쁜 염증이 생겼는데 배를 여는 수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내시경을 통해 전기로 염증이 있는 부위를 제거하겠다고 둘러댔다.
내시경시술도 잘 끝냈다. 그러나 거짓말이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남편, 자식들, 며느리의 표정에서 무엇인가 읽었으리라.
병실에서 조용히 물어왔다.
『제 병이 방광암인 거죠?』
한 가닥도 흐트러짐이 없다.
『저희 학교가 신설학교라 몇 년은 애를 써야 자리가 잡힐텐데…』 들릴까 말까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용기를 내 『그래요. 방광암은 암 중에서 가장 착한 암입니다. 저와 함께 인생을 사는 거예요. 한 달에 한번씩 소변검사를 하고 3월에 한 번씩 내시경 검사를 하고, 만약 그 안에 재발하면 바로 전기로 지져버리면 되는 거예요.』
그 후 교장선생님은 매월마지막 토요일에 찾아오기를 15년간 계속해 왔다.
처음 2년간은 3개월마다 방광경검사를 시행했다. 재발이 없어 이제 6개월마다 하자고 했더니 고개를 세게 흔들며 계속 3개월마다 검사하겠다고 우긴다. 무조건 정년까지는 아이들하고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재발이 두 번 있었지만 정년 퇴임한 후의 일이다.
이때쯤부터는 치료장비도 월등히 좋아져 내시경을 통한 레이저광선치료를 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방광세척요법(항암제나 면역요법제로 방광을 주기적으로 세척하는 치료법)까지 개발된 뒤라 두 번의 고비를 아주 쉽게 넘겼다.
그렇다. 방광암치료에서 가장 절대적인 것은 정확한 추적관찰인 것이다.
조기에 재발을 발견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L여사를 통해 거듭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완전히 일치된 의사와 환자의 정성이야말로 질병에 대한 가장 큰 무기인 것이다.
권성원<이대병원·비뇨기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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