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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어미』로 미스터리물 새 장 열어|영화감독 박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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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임영(영화평론가)
박철수 감독(1948년생)은 지난 9월 일본 복강영화제에 『오세암』(90년)이 초청되어 다녀왔다. 동경영화제가 유럽의 유명영화제를 모방하고 있다는 인상인데 비해 복강영화제는 아시아에 초점을 둔 Focus on Asia라는 주제여서 마음에 들었다.
한국감독으로는 임권택 감독과 둘뿐이었다. 북한감독들과는 자리를 나란히 앉아 비교적 격의 없이 지냈다. 아시아의 영화들을 한데 묶어 보니까 공통적인 테마는 고향 회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철수는 『니르바나의 종』(83년)때는 로테르담·몬트리올·홍콩영화제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당시 파리대학에 다니며 『영화』지 파리통신원을 하던 평론가 유지나가 『니르바나의 종』이 유럽 일대에서 호평이라는 기사를 썼다.
『니르바나의 종』은 『땜장이 아내』로 기록되어 있다. 정다운 스님이 원작을 쓴, 1천3백년 묵은 범종에 얽힌 이 드라마는 당초 출판되기는 『니르바나의 종』, 라디오 드라마로 나갈 때는 『땜장이 아내의 속곳』이었다. 영화도 당초는 『니르바나의 종』으로 하려했으나 주변에서 이름이 어렵다고 하여 『땜장이아내의 속곳』으로 했더니 문공부에서 「속곳」이 뭐냐고 발로 차버려 『땜장이 아내』가 되어버렸다. 바깥에 나갈 때는 『니르바나의 종』으로 했다.
박철수 감독의 이름이 아연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어미』(85년·김수현 오리지널 시나리오) 때였다.
여고생 딸이 납치, 윤간되고 사창굴에 팔린 것을 발견한 어머니가 처절한 복수극을 벌이는 가슴 섬뜩한 액션 미스터리였다. 사회적으로는 예언적 요소까지 있었다. 액션 미스터리에 광적인 팬들은 모두 놀랐다. 한국감독 중에 이렇게 세련된 서스펜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작가 김수현씨는 그러나 불만이 컸다. 감독이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충실히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어미』는 한국 액션 미스터리사상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박철수는 그 후 『안개기둥』『접시꽃 당신』등 연속 히트를 쳐 중요한 감독이 된다.
그는 대학시절 한일협정 반대 데모에 격렬히 참가했던 반동(?)으로 자원입대, 월남전에 참전하고 병장 제대한다. 잠깐 여고교사노릇을 하고 KAL에 근무할 때 우연히 신필름사람들을 만나 유한철 시나리오 『별은 멀어도』(69년·홍성기 감독)를 보고는 직장생활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이경태 감독이 한운사 각본 『욕망』(75년)을 할 때 조감독으로 들어간다. 여기선 정윤희가 데뷔한다.
신상옥 감독의 『장미와 들개』(75년) 조감독 때는 문공부에서 커트한 부분을 예고평에 넣는 작업에 가담해 결과적으로 신필름이 문울 닫는 원인에 관계한다.
충무로 아웃사이더인 그는 방황하다가 전쟁영화전문으로 간주되는 설태호 감독 연출부에 들어가 『원산공작』(76년), 『캐논청률공작』(77년), 『도솔산 최후의 날』(77년)등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다. 월남에서의 실전경험을 살린 것이다. 이때쯤 우수시나리오 제도가 처음 생겨 스웨덴 동화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를 윤색한 송길한 각본 『둘도 없는 너』(77년·설태호 감독)를 적극 추천, 첫 수상작으로 만든다.
82년에는 MBC에 입사하여 8년쯤 지낸다. 이때 MBC- TV는 스튜디오 안에서만 찍다가 야외로 나오려니까 감독이 필요했다. 4년제 대학 나오고 영화3편 이상 연출한 사람에 박철수와 정지영 감독이 해당되었던 것이다. 베스트셀러극장 프로에서 『또 한 번 그 봄날』등 17편했고 특집극 『생인손』등 몇 편 했고, 이규태 저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8회에 걸쳐 텔리에세이라는 시리즈로 내보냈다.
이 당시는 필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좋았다. 출·퇴근 타임 체크를 안 한다고 들볶는 등 조직의 힘이 개인생활을 지배하려해서 나와버렸다. 좋은 경험이었다.
영화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뭔가 좀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최근 다시 메가폰을 잡고 여성영화를 만들어낸 박씨의 건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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