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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시는 리모델링중] 2. 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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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뉴욕시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의 스톤 스트리트. 19세기 이전 건축물로 이뤄진 블록이다. 1990년대 초만 해도 그 흔한 사무실 빌딩이나 쇼핑몰조차 없이 쇠락해 가던 이곳이 대변신을 했다. 카페와 레스토랑.빵집.의류점이 즐비하고 사람들이 북적인다.

지난 8년간 뉴욕시와 시민단체들이 2백30만달러를 들여 거리 환경을 개선하고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들을 랜드마크로 지정하는 등 소생작업을 벌인 결과다. 랜드마크 중엔 조지 워싱턴이 드나들었다는 술집 프라운시스 태번 건물도 있다.

맨해튼 섬 남쪽 끝부분인 로어 맨해튼은 뉴욕의 탄생지다. 17세기 초 네덜란드 이민들이 여기 처음 자리잡고 뉴암스테르담이라 이름 붙였다. 이곳의 길은 아직도 좁고 구불구불하다. 돈을 좀 모은 네덜란드인들은 좁은 길과 낡은 집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갔다. 빈 자리를 새 이민집단이 채우고, 그들도 형편이 나아지면 빠져나갔다. 대대로 저소득층이 사는 낙후 지역이 된 것이다. 그런 로어 맨해튼 곳곳에서 90년대 중반부터 스톤 스트리트 같은 지구 활성화와 재개발이 한창이다.

로어 맨해튼 재개발의 초점은 역시 세계무역센터 재건이다. 쌍둥이 빌딩이 파괴되는 바람에 잃어버린 업무.상업 공간 42만평의 회복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공모해 뽑은 대니얼 리베스킨트의 초현실적 빌딩 디자인에 대한 논의, 3천여 희생자를 기념할 공간의 넓이에 관한 의견 수렴 등이 진행되고 있다. 2만평에 이르는 부지의 개발에는 여러 단체가 간여한다. 2001년 9.11 사건 두달 뒤에 파타키 뉴욕주지사가 주도해 설립한 로어 맨해튼 개발공사, 토지 소유주인 뉴저지.뉴욕 항만청, 그들로부터 99년간 이 땅을 빌린 개발업자 실버스타인, 그리고 시민단체들이다.

로어 맨해튼의 일부인 소호(Soho)의 의류 공장.창고 지대는 1970년대에 싼 임대료와 널찍한 공간을 찾는 실험예술가들의 주거 겸 작업장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벤처.광고.디자인 회사들과 고급 아파트가 혼재한 고급 지역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대규모 부동산 자본들에 의한 건물 리노베이션이 바쁘게 벌어지고 있다. 리노베이션과 재개발을 많이 한 결과 로어 맨해튼은 다른 곳보다 사무실 임대료가 낮아졌다고 한다.

역시 이 지역에 있는 배터리 파크 시티는 워터프런트 개발의 성공 사례다. 맨해튼 남단 허드슨강변에 있던 부두를 없애고 11만3천여평을 매립해 주상복합 단지로 만들었다. 79년 계획을 세워 2001년 건설을 끝냈다. 용도별 구성 비율은 주거지 42%에 상업.업무용지 9%, 녹지 30%, 도로용지 19%. 정부는 매립 등 기반 조성에 2억달러(약 2천4백억원)를 들였으며, 나머지 막대한 투자는 올림피아 앤드 요크사 등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맡았다.

1982년에 아파트 첫 입주가 시작됐고, 86년 월드 파이낸셜 센터가 문을 연 후 2002년 초 리츠칼튼 호텔이 개관하기까지 여러 시설이 차례로 완성됐다. 월드 파이낸셜 센터는 전통적인 마천루 형태의 건물 네동(34~53층)으로, 10년 앞서 지어진 모더니즘 형식의 세계무역센터와는 건축 유형이 전혀 다르다. 배터리 파크 시설물의 부지 대부분은 뉴욕시가 빌려줬다. 시는 배터리 파크 시티에서 1백억달러(약 12조원)의 개발 수익을 얻으리라고 예상한다.

허드슨강을 따라 뻗은 1.9㎞의 산책로도 눈길을 끈다. 뉴욕의 항만시설이 쇠퇴하면서 수변 지역은 부랑자와 쓰레기의 거리로 인식됐다. 이런 이미지를 바꿔버린 새 산책로는 워터프런트 활용의 본보기로 꼽힌다.

뉴욕시 도시계획담당관 샌디 호닉은 도시 경제가 성장을 계속하면 업무.상업.주거 공간의 수요가 늘어나는데 "뉴욕 같은 도시에서 새로운 공간을 얻는 수단은 재개발뿐"이라고 했다. "2020년까지 시 전체에서 약 1천7백만평의 업무공간이 더 필요하므로 배터리 파크 시티 같은 주상복합 개발을 주로 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시의 소망대로 2012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경우 관련 시설도 마련해야 한다.

이에 따라 허드슨 야드(Hudson Yard) 재개발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 맨해튼 중서부의 59개 블록이다. 부두로 들어오는 상품들을 보관하는 창고와 도매센터, 의류 중심의 제조업 등을 수용했던 곳이다.

2009년까지 지하철 7번선을 연장하고 고밀도 개발을 허용해 성장 잠재력을 키울 계획이다. 앞으로 20년 동안 가로 경관을 개선하고 녹지를 조성하며 약 1백12만평의 사무실.호텔.주거 시설과 스포츠 시설을 확충하고, 허드슨강과 연결되는 보행로도 만든다. 현재의 의류산업 기능 중 일부를 살리기 위해 특별 의류센터 구역도 둔다.

여름올림픽을 열게 되면 이 지역 중심부에 경기장을 건설하며, 유치 실패 때는 경기장 예정지를 상업지역으로 개발한다는 양면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해당 지역 시민단체들은 올림픽 스타디움 건설을 강하게 반대한다. 맨해튼의 도시 분위기를 크게 해칠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저소득층을 내몰게 된다는 주장이다. 대도시 재개발의 쟁점이 여기에 있다. 재개발이 금융.서비스업과 엔터테인먼트 업종의 유치를 주안점으로 하기 때문에 도심에서 제조업이 사라지고, 그에 따라 블루 칼라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그들의 주거지가 대폭 줄어드는 것이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저소득층의 주거지가 고소득층의 주거지로 변하는 것)'이 바로 그 현상이다. 도시 산업구조의 변화 추세를 아주 무시할 수야 없겠지만, 재개발의 핵심 주체인 민간 개발업자들이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업무용 사무실과 고급의 주거.소매 시설들에 치우치는 것이 더 문제라고 비판자들은 주장한다.

신혜경 전문기자 도시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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