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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별 왕자의 경제 이야기] ③ 중동의 '동막골 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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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중동의 ‘동막골 이장’

다음날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한 뒤 이강은 이번 출장의 목적이었던 세미나에 참가했다. 오만 정부 초청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이 나라에 대해 몇 가지는 알고 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도 생겼다.

그는 오만 정부가 이 나라의 최대 국경일인 국왕 생일에 맞춰 초청한 30개국 기자 약 80명과 자리를 함께했다. 그런데 이 나라에 대해 하나, 둘씩 알게 되면서 예상치 못 했던 흥미에 끌리기 시작했다.

-어라, 이것 봐라. 절대 왕정이라고?

지금이 감히 어느 시댄데 …. 21세기에 헌법도, 정당도 없이 국가가 존재하고 운영된다고?

헌법도 없다는 지적에 대해 오만 관리는 부인했다. 1996년에 나라 경영의 대강을 담은 헌장(charter)을 선포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왕의 칙령일 뿐 국민의 대표들이 만든 한 나라의 통치 기본을 담은 헌법은 아니었다. 정당이 없으니 선거도 없고 의회도 없다. 의회 비슷한 역할을 하는 자문회의가 있긴 하지만.

독재국가인가? 당연히 그렇다. 절대 왕정이니까. 사우디아라비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라비아 반도의 동남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남한 면적의 세 배나 되는 나라에 인구는 고작 250만 명.

오만 사람들은 이런 국가 체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카부스 국왕의 통치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영국에서 유학한 뒤 돌아와 무역회사에 다니다 지금은 건강이 안 좋아 파트타임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한 40대 남자는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소수였다. ‘1970년 카부스 국왕 취임 이후 이렇게 잘 살게 됐는데, 존경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랬다.

35년 독재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이처럼 안정시킨 비결은 뭘까. 사실 어떤 독재 국가에도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는 있다. 단지 언론통제로 인해 그런 사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오만도 이 점에서 예외는 아닌 듯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저항은 크지 않아 보였다.

무슨 비결일까. 기본적으로 이 나라 사람들은 알라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착한 백성들이었다. 정치적이나 이념적으로 예민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그들이 원하는 걸 충족시켜 주는 정치가 대답이 될 것 같았다.

카부스 왕 즉위 전 오만의 포장도로는 8km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고속도로는 사막과 산악지대를 가리지 않고 전국의 주요 도시를 연결한다. 산유국답게 가로들이 고속도로의 밤길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국왕의 통치 비법이 ‘동막골’ 이장님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북한 병사가 동막골 이장에게 ‘어떻게 마을 사람들을 이렇게 잘 이끌 수 있느냐’고 묻자 이장은 심한 강원도 사투리로 ‘머를 마이 메게야 대’라고 답한다. 뭐든지 많이 먹여야 한다, 다시 말해 경제적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강은 한 나라가 어떤 정치체제를 갖느냐는 건 그리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고전적 개념의 선정(善政)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 사구에 서서

다음날 아침 일찍 이강은 사막으로 향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사막 가운데 하늘을 향해 파도나 초승달 모양을 그리고 있는 사구(砂丘)를 밟아보는 것은 그의 오랜 꿈 중 하나였다. 그가 사막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더니 오만 공보부 관리는 기사가 딸린 차를 내주었다. 세 시간쯤 달려 가장 가까운 사막에 도착했다.

거기서 힘 좋은 SUV로 갈아타고 다시 사막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거기 오래전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막이 있었다.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을 등으로 받으며 이강은 사구를 향해 발길을 내디뎠다.

30도를 훌쩍 넘는 기온에 얼굴에는 이내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모래는 바닷가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이 정도는 가벼워야 바람에 쓸리면서 알라의 뜻대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모래 언덕이 있고 얕은 계곡도 형성돼 있었다. 기사 겸 가이드는 다시 차에 오르라고 했다.

닛산의 패스파인더는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곧 사라질 길을 만들며 잘도 달렸다. 마침내 커다란 구릉 위로 올라섰다. 장관이었다. 거대한 모래 바다가 거기 있었다. 거기서 그는 지표면의 모래들이 알알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시간에 걸친 사구 여행을 마치자 가이드는 자신의 목장으로 안내했다. 목장이라는 것이 사막 한가운데 말뚝 몇 개 꽂아놓은 것이 전부였다. 집은 말린 사탕야자 나무 이파리가 세 벽과 천장을 대신하고, 터진 한 곳은 모래 바람을 그대로 맞아들이고 있었다.

사막의 한 부분인 방바닥엔 그의 아내가 짰다는 자그만 깔판이 몇 장 깔려 있었다. 양치기 가장은 우유를 짜고 치즈를 만들어 판다는 자신의 양들을 가리켰다. 새끼를 합쳐 약 스무 마리는 돼 보였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녹색을 찾기란 어려웠다.

“이 양들에겐 뭘 먹입니까?”
“풀을 주지요.”
“풀이 어디 있습니까?”
“저기요.”

양치기가 가리키는 곳을 봤지만 그의 눈으론 녹색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다시 유심히 보니 비슷한 무엇이 보였다.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파리가 거의 바늘 모양으로 변한 볼품없는 작은 덤불이었다. 양들이 그걸 먹고 우유를 생산한다는 것이 경이로울 뿐이었다.

이제 걸음마를 배운 양치기 아들의 눈가엔 계속 파리가 달라붙었다. 그의 아내는 까만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고 자신이 짠 직물을 들어보였다. 하나 팔아 달라는 얘기였다. 그때 사막의 목장 주인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도 휴대전화를 쓰시네요.”
“네, 2년쯤 됐지요.”

휴대폰을 사용하는 걸 보고 놀라 묻는 이강에게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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