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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인 YS 「깊은뜻」 설왕설래(일요초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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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주발언파동후 「말없는 두달」/청와대와 신뢰관계 최대 역점
김영삼 민자당대표가 숨을 죽인채 낮은 자세로 행동해온지 근 2개월이 흘렀다. 제주파동이후 노태우 대통령의 정치일정논의 중단지시가 있고난 다음부터 일체의 정치관련발언을 삼가는가 하면 마치 오래전부터의 노대통령측근 휘하인 것처럼 조심스러운 처신을 하고 있다.
이같은 김대표의 새처신에 대해 주위에선 그가 정말 노대통령의 점지만 기다리고 있는 건지,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비장의 칼을 갈아대고 있는 것인지 궁금증을 갖고 있다.
측근들은 『현상태에서 가장 효과적이란 판단아래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함축적으로 설명한다.
측근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김대표의 의지가 대권 장악과 직결돼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만큼 바싹 엎드려있는 현재의 형국 그 자체가 자신의 대권행로를 밟아나가는 수순이며 그 뒤는 눈에 띄게 불거지지 않을뿐 여러방면에 걸쳐 쉼없는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실제 김대표와 막하진영은 어느 때보다도 바쁘고 힘겹게 움직이고 있는게 사실이다. 김대표의 빡빡한 일정 때문에 최근 방한한 한 일본 경제단체회원들은 몇차례의 면담요청끝에 아침 상도동에서 조깅과 식사시간 사이에 가까스로 만날 수 있었노라고 비서들이 전할 정도다. 민주계 중진의원들도,비서팀도 왠지 분주한 모습들로 사람만나기·회의·컴퓨터두드리기 등에 매달려 있다.
김대표측은 침묵의 이 기간을 ▲노대통령 및 여권인사들과의 신뢰구축 ▲약점보완에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혹 있게 될지도 모를 당내 한판승부에 대비한 조직정비와 장기적으로 대선준비까지 은밀히 추진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김대표의 새처신이 노리는 바는 최종결정권자인 노대통령과의 유대강화는 물론 6공의 사후보장 등에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점지」의 최대장애요인중 하나로 꼽히는 불안감을 씻어주겠다는데 있다고 관측되고 있다.
김대표특유의 밀어붙이기전법은 이미 몇차례 경험했듯 상대편의 반감만 두텁게 쌓을뿐만 아니라 주변에 경계심을 확산시키는등 역효과라는 인식을 절감하고 있는 듯 하다.
김대표측은 노대통령과의 신뢰구축면에선 상당한 진전이 있노라고 전하고 있다.
노대통령과 매주 한차례씩 만나는 주례회동이 두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며 부시 미 대통령 면담소개도 그런 바탕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표는 청와대면담전에 서동권 안기부장과도 한두차례 만났는데 이런것도 노대통령의 「배려」이며 이로인해 서부장등 정부내 핵심요직들이 YS쪽으로 기울고 있다는게 민주계의 주장이다.
이러한 접촉은 대부분 밀실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어느쪽도 공개하지 않아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있다.
한 중진의원은 11일의 청와대회동이 무척 화기애애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주례회동후면 항상 만족스러운 표정이라 잘돼가는 모양이라는 느낌을 받곤 한다』고 노­YS 관계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김대표의 가장 큰 변화중의 하나는 기자들을 일체 만나지 않는 점.
신문에 자신의 기사가 없으면 섭섭하다못해 측근들을 닦달했다는 김대표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기자들을 피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YS계의 한 측근은 『온갖 불평에도 불구하고 김대표가 함구하는 것은 그만한 담보가 있다고 봐야한다』고 「낙점가능성」을 풍긴다.
YS측의 주변공작도 집요하다.
특히 노대통령의 친·인척을 비롯해 TK핵심세력이 대통령최종결심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할 것으로 보고 다방면으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문제는 민정계·관계·군·재계 등의 광범한 반 YS층. 민주계도 자신들의 생각을 훨씬 넘어 반YS감정이 의외로 두껍고 단단하다고 실토하기도 한다.
『여권전체의 흐름은 YS수용에 대해 50대 50』으로 점치는 C모중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면서 민정계의원·군 및 관료계 인사·재계쪽 사람들을 상대로한 설득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있다.
필요할 경우 김대표가 직접 나서기도 하지만 대부분 최형우 정무장관,박관용·김덕룡 의원등이 조용히 활동하고 있으며 이미 「내쪽사람」이 된 신민주계 중진등 구여권인사들에게 설득작업의 큰몫을 맡기기도 한다.
이대목에서 고김동영 의원의 공백이 무척 크게 느껴진다고 입을 모은다.
김대표측의 주무기는 이른바 「대세론」과 「대안부재론」.
요즘엔 그러한 내용들이 어느정도 먹혀들고 있다고 판단,「공생론」쪽에 주력하는 편이라고 한다. 김대표는 뉴욕방문때 재미교포학자들에게 『우리의 헌법체계는 대통령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돼있다』며 사실상 내각쪽에 책임·권한이 많은 제도임을 강조한 대목이 있는데 이것이 민정계에 대한 설득수단.
YS는 『우리쪽에 사람이 있느냐』고 인물부재실정을 언뜻 언뜻 흘리면서 향후 중요직책에 6공인사 대폭기용의 뜻을 끊임없이 흘리고 있는 것이다.
김대표의 가장 큰 약점은 「자질부족」「경제0점」이라는 등 당내외의 비판.
김대표는 이에 대비해 기획원출신의 당전문위원이던 한이헌씨로부터 지난해 5월부터 매주 한차례씩 「경제과외수업」을 받아왔는데 최근 한씨를 아예 자신의 특별보좌관으로 정식 임명,당사에 사무실까지 마련해 줬다.
이밖에 소장파 대학교수 5명으로부터 역시 주1회 번갈아가며 강의를 듣는다.
김대표진영은 조직관리도 결코 게을리하지 않는다. 민주산악회등 통일민주당때의 조직을 거의 그대로 유지,확대하고 있으며 차남 현철씨가 운영하는 별도의 팀등 대선을 대비한 사조직도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준비작업과 노력을 보면 일이 여의치 않을때 그의 행동이 어떠하리란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한 의원은 『김대표 본인이 총선전 대권구도 가시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결판을 내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고 주장.
일부에서 『이제 김대표가 나가면 죽는 길인데 나갈 수 있겠느냐』고 하면 『김대표는 뛰쳐나가고 나서 생각할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결국 김대표의 평신저두는 대권장악을 위한 방편이다. 『김대표가 대통령되려는 것을 포기하면 대통령후보가 될 것』이라는 청와대 한 인사의 말이고 보면 그의 처신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형식으로든 김대표는 대통령후보가 되고 말것』이라는게 그의 대통령에 대한 집념이고 보면 그의 은인자중은 총선전 대권후보 가시화까지의 잠정적 방편에 불과할 것이다.<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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