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부정 「운수불길」일까/고대훈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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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백여년의 찬란한 전통을 21세기에 연결시켜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는 세계속의 이화인­.
우리나라 여성교육의 대명사라고나 할 이화여대 학교안내책자에 표현된 자부심이다. 이 대학 무용과 홍정희 교수의 시험부정 검찰수사소식이 전해진뒤에도 그런 전통이나 자부심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겠지만 학내 일부의 반응은 의외였다.
숨진 김선미양 외에 곽모양(18)가족들로부터도 홍교수가 5천만원을 받고 부정입학시켰다는 소문을 확인하려는 기자들에게 한 보직교수는 『왜 우리만 당해야 하느냐』는 식의 항변을 했다.
면목이 없다면서도 그는 『예체능계라면 어느정도 관행인데 저희 학교뿐이겠습니까. 지난달 김양의 어머니가 찾아와 홍교수가 곽양측으로부터도 돈을 받았다는 말을 한적은 있으나 극구 부인하는 원로교수의 양심을 믿고 그대로 덮어두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진실을 밝혀 반성의 기회로 삼으려는 노력보다는 「재수없이 터진 일」로 치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교수만이 아니라 일부 학생들의 반응도 대체로 비슷했다.
『왜 다른 대학은 놔두고 우리만 가지고 그래요. 뒤져보면 모두 구린데가 있을텐데….』
무용과의 한 학생은 입시부정이란 「관행」이 떠들썩한 사회문제가 되는 것 자체가 왜그래야 하는지 의아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교수님의 말 한마디,눈길 하나에 장래가 좌우되는 현실에서 잘 보여야 클 수 있는것 아닙니까. 오죽하면 교수님의 개인발표회에 찬조금까지 내면서 뒤치닥거리까지 하겠습니까.』
자신들의 치부까지 드러날까봐 꿀먹은 벙어리처럼 반발조차 못하겠다는 한 학생의 푸념이 차라리 솔직한 「양심선언」처럼 들렸다.
홍교수의 검찰소환소식이 전해진 12일에도 일부대학 당국자들과 학생들은 이번 사건을 우연한 김양의 교통사고와 뒷수습을 잘못한 홍교수의 처신에서 비롯된 사건일 뿐이라는 인식에서 한발짝도 더 나아갈 의사가 없는 듯 했다.
이런 현상은 금년들어 빈발한 예능계 입시부정을 겪은 다른 대학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일이다. 이런 입시부정을 한때의 「운수불길」로 돌리고마는 풍토에서는 계속 불길한 운수가 되풀이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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