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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한국인 피살] 정부, 한국인 몇명 있는지도 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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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달 30일 오무전기 직원 4명의 피습으로 이라크 한인사회는 초긴장에 빠졌다. 그러나 정부는 체류 한국인이 몇명인지 파악조차 못해 안전대책에 허술함을 드러냈다.

◇이라크 한국인들 비상=바그다드 주재 손세주(孫世柱) 대리대사는 사고 다음날인 1일 "안전이 최고인 만큼 이라크에 머무는 우리 국민은 대사관의 안전지침을 따라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교민들에게 비상연락 체계를 유지할 것, 바깥 활동을 자제하며 집과 사무실에서 근무할 것을 권고했다.

KOTRA 바그다드 사무소 김규식 관장은 "치안상황이 극도로 위험해 무역관은 유지하되 직원 상주 여부는 추후 상황을 봐가며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KOTRA는 또 홈페이지에 '이라크 출장을 자제하라'는 긴급 공지사항을 띄웠다. KOTRA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출입을 삼가고 ▶혼자 다니지 말며▶차량 이동시 함께 움직일 것▶현금을 지니지 말 것▶강도에게 돈을 줄 것 등 행동 수칙도 마련했다.

주재 회사의 경우 건설업체 중 유일하게 바그다드 지점을 둔 현대건설은 바그다드 지사와 쿠웨이트 등에 ▶야간 외출 금지▶외국인과의 동행 자제▶다중이용 시설 출입 자제 등의 행동지침을 내렸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이라크에서 활동 중인 바그다드 지사장 김갑수 이사에게 방탄조끼를 긴급 공수했다.

이라크 주변 국가에 있는 기업들도 '이라크 출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삼성전자는 중동지역 주재원 및 가족, 현지 채용인들에게 이라크 출장 자제를 지시했으며 LG전자도 테러 위협이 큰 지역의 출장을 자제시켰다. 종합상사들도 '사업보다는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가급적 외출과 출장을 자제하도록 지시한 상태다.

◇엉성한 현황 파악=그러나 정부는 가장 기본 정보인 체류 한국인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대책이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현재 공사를 위해 이라크에 들어간 것으로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업체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건설교통부와 해외건설협회는 "말 없이 들어간 기업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해외건설을 하려면 건교부에 면허 신고를 하고, 입찰 열흘 전 해건협에 수주보고 및 계약 사실을 보고해야 하는데 이는 해외건설촉진법상 의무라는 것이다. 특히 위험한 이라크에 대한 사전 정보를 위해서도 해건협과 접촉하는 게 통례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KOTRA는 "한국인들이 대사관 등에 이라크 입국 사실을 꼬박꼬박 알리지 않아 숫자가 파악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KOTRA는 "기업들은 조용히 움직이려 하고 KOTRA와도 함께 일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공식적으론 1백명 미만이라는 입장이지만 실제론 수백명이 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무전기도 지난달 21일 해건협을 찾았지만 막상 이라크에선 대사관에 보고하지 않았다. 또 인천공항을 통해 9~10월 요르단으로 간 한국인만 80여명으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라크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지만 통계에는 잡히지 않고 있다.

윤영관 외교부 장관은 1일 "보안상의 이유 때문에 이라크에 체류하는 한국인의 수를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본지가 1일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지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있거나 자주 왕래하는 기업은 ▶대우인터내셔널▶현대건설▶서버넥스(무역은행)▶동아 IT&T▶하메드 트레이딩 ▶히트코리아▶이.한 무역▶아르빌무역 등 8개 업체에 이른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강찬호.김승현.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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