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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대 지나야 마음까지 통일(통일독일 1주년: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외국인 싫다”… 보수우경화/대외파병 추진하는등 야심 드러내
『통일이후 동서쪽 주민간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정신적인 재통일이 이뤄지기까지는 앞으로 1∼2일세대가 걸릴 것이다.』
헬무트 슈미트 전독일총리가 최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적한대로 통일 1주년을 맞는 동서쪽 주민들이 서로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동쪽 주민들로선 지난 40여년간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우등생이었던 자신들의 모든 제도와 가치를 「악」으로 규정해버리는 서쪽 사람들의 거만함이 못마땅하며,서쪽주민들은 일은 하지 않고 자기네들과 같은 대우를 받으려 하는 동쪽 주민이 뻔뻔스럽게 느껴질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게됐으니 속이 편할리 없다.
독일 슈피겔지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쪽주민의 50%가 『통일후 동·서주민간의 거리가 더욱 멀어졌다』고 느끼고 있으며,63%는 『서쪽 주민이 동쪽을 식민지처럼 점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서쪽주민의 58%는 동쪽주민을 위한 세금인상으로 생활수준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이 나눠가지고 있는 한가지 공감대가 있다.
바로 외국인을 싫어하는 점이다.
지난달 29일 실시된 구서독 브레멘주 의회선거 결과는 최근 독일의 이러한 보수우경화,더 나아가 나치의 망령을 떠올리는 인종차별주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지난 20여년간 집권해온 사민당(SPD)이 38%대 30%로 기민당(CDU)에 승리하긴 했지만 내용은 사민당의 참패였다.
사민당 지지율이 87년보다 12%포인트 떨어진 대신 기민당 지지율은 7%포인트나 늘었다.
극우정당인 독일국민연맹(DVU)도 6.18%를 획득,원내진입에 성공했다.
지난해 12월 첫 통독총선이후 지방의회선거에서 기민당에 3연승한 사민당이 이처럼 「패배」한 이유는 간단하다. 30일 비외른 엥홀름사민당 총재의 지적대로 사민당이 외국인 문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리를 잘못 읽은 것이다.
지난 9월 셋쨋주말 구동독 작센주의 호이에르 스베르다에서 극우파들이 외국인 노동자 및 난민수용소를 습격,유혈충돌 끝에 결국 외국인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킨 사건이 발발한 이후 사민당은 난민유입을 막기 위해 기본법(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기민당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그 결과는 선거에서의 패배였다. 호이에르 스베르다사건이 터진 이후 정치권에서는 한 목소리로 극우파들을 비난하고 나섰지만 외국인에 대한 테러는 동쪽은 물론 서쪽까지 확산되며 급증하고 있다.
얼마전 국영 제2ZDF­TV가 마련한 생방송 토론회에 참석한 한 극우파 출연자는 『외국의 돼지들은 나가라』고 서슴없이 발언,시청자들을 경악케 했다.
국내의 이러한 보수우경화 분위기는 대외관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주변국가들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번 걸프전때 「경제거인,정치난쟁이」란 소리를 듣던 독일은 유고사태와 관련해서는 「정치벌레」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외교적으로 무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걸프전이후 독일은 연방군 대외파병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물론 야당인 사민당이 유엔평화유지군에 한해 대외파병을 해야한다고 주장,현재 논란이 되고 있지만 콜 총리는 이를 위한 기본법 개정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아직 불발상태이긴 하지만 내전중인 유고에 서유럽동맹(WEU)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자는 것은 원래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의 아이디어로 독일은 군대파견에 적극적인 입장이다.
소련 및 동유럽의 대변혁이후 이들에 대한 독일의 입장도 기본적으로 프랑스등 다른 유럽공동체(EC) 국가들과 달라 최근들어 독일·프랑스간 불협화음이 노출되고 있다.
막강한 경제력과 지정학적 우위을 바탕으로 소련·동유럽을 「석권」하겠다는 독일의 팽창주의적 야심이 이미 탄로나 이를 저지하려는 프랑스등 EC국가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부시 미 대통령의 단거리핵무기 감축선언으로 프랑스의 입장이 다소 곤혹스러워지긴 했지만 최근 사정거리 4백80㎞인 아데스 단거리핵미사일 30기를 프랑스가 배치한 것은 다름아닌 이러한 「통일독일의 거대화」 움직임에 대한 견제라는게 정설로 돼있다.
이 때문에 이 문제는 현재 독·불간에 신경전이 되고 있지만 프랑스의 입장에서 볼때 프랑스가 꼭 잘못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내외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그만큼 독일의 보수우경화 경향 및 대외적인 강성이미지는 통일이 1년 지난 지금 대내외적으로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동서냉전질서 붕괴이후 국가이기주의에 기초한 민족주의가 현재 소련·동유럽은 물론,전세계로 확산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독일인들은 나치의 죄악이 어디에서 출발했는가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세계 사람들이 통일 1주년을 맞는 독일인들에게 보내는 충고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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