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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총리 사임/반정부 유혈시위 확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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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광원 20만명 무기한 총파업
【부쿠레슈티 AFP=연합】 페트레 로만 루마니아 총리는 26일 물가폭등등 민생고에서 비롯된 대대적인 유혈반정부 시위가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연이틀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격 사임했다.
그러나 광원 20만명이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진 상황에서 반정부 시위대는 이온 일리에스쿠 대통령 사임까지 요구하며 정부청사 및 TV 방송국 등 주요기관 점거를 시도,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루마니아 정부는 반정부세력이 「공산 쿠데타」를 기도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시위 진압에 투입된 보안군에 실탄을 지급하는 등 단호하게 대처할 것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긴장이 심화되고 있다. 이번 시위로 최소 4명이 사망하고 2백명이상이 부상했다.
로만 총리는 26일 부쿠레슈티 방송을 통해 『지금까지 이룬 민주주의 성과를 위협하는 이번 폭력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사임키로 했다』고 밝혔다.
일리에스쿠 대통령은 이날 전국에 중계된 TV연설에서 로만 총리의 사임을 확인하고 그러나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기존 내각이 과도정국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위대 1만여명은 이날 로만 총리의 사임 발표에도 불구,전날에 이어 쇠파이프·화염병 등을 들고 정부청사·의사당 및 TV방송국 등 주요기관에 대한 점거를 계속 시도했다.
◎공산당지도자 잔류에 불신 쌓여/민생외면정책·고물가에 큰 반발(해설)
25일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발생한 광원·시민들의 폭력적 반정부 시위사태는 동유럽개혁의 길이 얼마나 험난할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89년 12월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셰스쿠 대통령을 처형,「피의 혁명」을 통해 동유럽민주화대열에 극적으로 합류했던 루마니아는 동유럽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여건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나라로 꼽힌다.
정치적으로는 지난해 5월 최초의 자유선거끝에 구국전선(NSF) 신정부를 구성,형식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를 청산했으나 실제로는 집권NSF내에 이온 일리에스쿠 현대통령을 비롯,구공산당 간부 대부분이 그대로 살아남아 지식인·학생들의 불신을 받아왔다.
이같은 불신은 지난해 4∼6월 구공산당 고위간부의 공직추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에서 드러난 바 있다.
현루마니아정부는 이같은 정치적 취약성을 벌충하기 위해서도 경제재건을 지상과제로 삼았다.
페트레 로만 총리는 급격한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추진,지난해 11월 사기업 설립허용,정부보조금 폐지,상품·서비스가격 자유화조치를 단행하고 외국인 투자유치,민영화허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법령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정부의 생필품 우선 확보,바나나 등 인기상품 수입,민생부문에 에너지 우선공급 등 민생우선정책에 잠잠해 있던 국민들은 당장 철도운임·맥주·TV가격 등이 2∼3배로 뛰자 불만을 품고 정부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현재 루마니아 경제는 시장경제로 전환하면서 물자부족,연3백%의 급성 인플레,20만명에 이르는 실업자 등 삼중고에,시달리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루마니아 북서부 탄전지대인 지우계곡 광원들의 파업도 물가상승 압박을 상쇄할 수 있는 임금 인상요구가 좌절된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 광원들은 지난해 6월 부쿠레슈티에서 일어난 학생·지식인 반정부 데모때 일리에스쿠 대통령의 진압호소에 호응,쇠몽둥이를 휘두르며 시위대를 유혈 해산시킨 현정권의 지주로,이번에 이들이 앞장서 정권타도를 외친 것은 현정권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루마니아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로만 총리가 인책사임하는 등 수습에 나서고 있으나 반정부시위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한편 야당세력들은 그들대로 사분오열돼 있어 현정권을 대체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의 불만을 누그러 뜨릴수 있는 「잘사는 민주주의」를 이룰 가능성은 앞으로 상당기간 거의 없다는 점에서 루마니아의 정치상황은앞으로도 계속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곽한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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