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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불허" 대변혁시대 성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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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1세기까지 앞으로 10년. 이제 「21세기」라는 표현은 더이상 먼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때가 되면 인류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했던 속도와는 비교할수 없는 템포의 변화를 각 부문에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서 세계가 겪게될 변화는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강자가 뒷전으로 밀려날수도 있고 노력과 준비 여하에 따라서는 약자의 부상도 없으리라고 단정할수는 없다. 인류활동 영역의 확대와 상호관계 형성의 불가측성이 생각보다 큰만큼 장래에 대한 준비들이 특히 선진국들에서 치열할 수밖에 없다. 유럽통합문제의 진통 때문에 주로 단기전략에 매달려 있는듯한 서유럽과 달리 미국은 사회 하부구조와 교육부문에 대한 혁신과 대비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일본은 외교·군사부문에서 경제 초강국에 걸맞은 역할을 감당할 태세를 준비중이다. 특파원들을 통해 선진국들의 21세기 대비태세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미국
『미국은 정치·경제·군사등 모든 차원에서 전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국가로 남았으며 미국의 이같은 리더십을 대체할 나라가 없을 것이다.』
미백악관은 21세기에 대비한 미국의 안보전략을 담은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이라는 책자를 최근 발간하며 21세기를 맞는 미국의 위치를 이렇게 스스로 설정하고 있다.
걸프전에서의 승리, 동구에 이어 소련의 사실상의 붕괴로 미국은 유일한 강대국으로 남게 됐으며 그만큼 미국이 져야할 짐도 무거워졌다는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미국은 21세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미국의 주도로 형성될 미래의 국제관계를 「새로운 국제질서」 로 명명하고 있다.
부시대통령 자신은 『새로운 국제질서는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바람이며 기회』 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부시대통령의 언급등을 종합해 본다면 「새로운 국제질서」 는 미국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인권·시장경제의 가치를 인류가 보편적으로 누리며 국가간 합의와 국제법에 근거하여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질서로 요약된다. 「국가안보전략」 은 미국이 이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립주의 정책을 지양하고 우방과의 정치·군사·경제적으로 협력합 것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정부는 또 강대국 위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그리고 21세기를 향한 장기계획으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교육과 기술혁신이다.
부시대통령은 지난해 4월 미국교육의 질을 혁신하기 위한 「아메리카 2천년」 이라는 장기적인 교육계획을 제시했다.
그는 스스로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 계획은 ▲전국민의 90%이상이 고졸이상의 학력을 갖고▲미국학생들이 과학과 수학에서는 세계 제1이 되며▲학령전 조기교육을 강화하고▲학교에서 폭력과 마약을 추방하며▲문맹 성인을 없앤다는 등의 여섯가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 계획은 한마디로 경제·기술등 모든 분야의 기초가 되는 교육에 우선적인 관심을 쏟겠다는 의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부시대통령과 50개 주지사는 이계획의 실천을 위해 중앙·지방정부와 기업·지역사회가 일체가 되어 관심을 쏟고 집중적인 교육투자를 하기로 합의했다.
이계획중의 하나는 비영리단체인 「새미국교육발전단」 을 구성하여 기업들의 찬조를 받아 전국하원의원 5백35개 지역구마다 1개의 실험학교를 지정, 학교마다 1백만달러씩을 투자하여 새교육 모델을 만들자는 것도 있다.
장기적인 교육투자와 함께 경제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도 대단하다.
미정부는 지난해 대통령직속으로 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경쟁력제고위원회」를 발족했다.
이 위원회는 미국이 국가적으로 관심을 가져야할 중요기술 22개 분야를 선정하여 연구개발에 집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백악관이 발행한 「국가안보전략」 에는 이러한 일반적 기술외에 에너지·환경·우주과학에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중반까지는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으며 안정된 공급을 할수 있는 새에너지원을 개발하며 그에 앞서 온실효과등 환경보호를 위해 안전한 핵에너지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환경오염을 막기위한 범세계적인 협력에 미국이 앞장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미국이 21세기를 위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우주과학·산업이다.
「국가안보전략」 은 미국이 하나의 국가적인 자원으로 우주선 발사능력을 제고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퀘일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국가우주위원회」가 발족돼 있다.
21세기의 우주산업은 20세기의 고속도로·댐과 같이 가장 중요한 사회하부 구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이 20세기에 전국을 잇는 고속도로망과 댐을 건설한 덕분에 부강을 유지할 수 있었듯이 이제 21세기를 위해서는 우주과학·산업에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21세기 문턱에는 달에 항구적인 정착시설을 만들고 화성에도 인간을 보낸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워싱턴=문창극특파원】
일본
경제력 걸맞은 정치대국 꿈꿔
「세계지도의 일본위치」에 관심집중
올들어 일본 신문·잡지의 논조는 일본이 21세기에 세계지도에서 어느 정도의 판도를 차지하며 그때 일본인들은 과연 행복하게 살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계에 공헌하는 일본」 「귀축미영론」 「고령화·고복지사회」 「세계신질서」 등의 말이 아주 자주 등장한다.
이들 말들을 잘 음미해보면 군사대국의 길을 치달으려는 뜻이 강하게 풍긴다.
걸프전쟁과 소련의 8월정변은 냉전종결이후 21세기를 맞는 일본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할지를 일깨우는 촉매제가 된것 같다.
일본경제연구센터가 최근 예측한 「2000년의 세계와 일본」 에 따르면 21세기 초년도 일본의 명목GNP (국민총생산)는 6조6천억달러가 된다. 92년 통합될 EC (유럽공동체)가 13조달러, 미국이 10조6천억달러다.
이때 1인당 GNP는 일본이 5만2천달러, 미국이 4만달러로 일본이 훨씬 앞선다.
세계전체의 국부는 41조7천억달러로 세계질서속에서 차지할 일본의 위상은 더욱 확고해질 전망이다. 그렇지만 아직 일본의 정치·군사적 위상은 경제력에 훨씬 못미친다.
일본의 원로등이 일본행정개혁의 그랜드디자인으로 「세계로의 적극적 공헌」 을 세우고 있는것은 그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조야의 초미의 관심사는 「경제력에 걸맞은 외교력의 구축」 이다.
지난번 걸프전쟁때 일본이 미국의 압력에 못이겨 1백30억달러를 지원금으로 낸데서도 입증되었다.
『돈낸만큼의 발언권을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갖고 있느냐』 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한걸음 더나가 소련이 거덜난 마당에 이제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안전보장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려면 미일안보조약은 폐기돼야 하며 자위대는 해체, 새로운 국군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게 사실이다.
걸프전쟁이 끝난 직후인 지난 3월 자민당 국회의원그룹인 「여명회」가 가이후 (해부준수)총리에게 일본의 경제력에 걸맞은 위상제고를 촉구했다.
「여명회」 는 일본의 새벽을 담당한다는 의지를 갖고 모인 일본 우익보수성향 국회의원들의 모임이다. 89년 11월8일 결성된 이 모임의 현재 회원은 24명, 회장은 『NO라고 말할수 있는 일본』 의 공동저자인 이시하라신타로 (석원신태낭) 다.
이들은 가이후 총리에게 낸 제언 서두에서 일본이 유엔내에서 아직 「적국」 취급을 받고 있는데 이의 삭제를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유엔헌장 제53조는 일본과 독일을 적국으로 규정, 이들 나라의 재침략에 대비한 것이라면 유엔안보이사회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무력행사를 할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의 여론조사에서 늘 인기 1, 2위를 다투는 「가장 인기있는 총리후보감」 인 이시하라가 바라는 것은 일본이 세계무대에서 초강대국으로 행세하는 것이다.
일본우익단체들이 최근 동경시내 곳곳에서 집회를 열고 주장하는 내용도 일맥상통한다. 「통일 전선의용군」 이라는 한 단체는 「자위대해체·국군창건」 을 플래카드로 내걸고 『미일안보조약은 폐기돼야 하며 일본 젊은이는 패전50년을 맞는 이제 진정한 독립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야한다』 고 주장했다.
지난번 크레송 프랑스총리를 단두대에 올려 세계적 주목을 받은 「일수회」 란 단체는 매주 한차례 집회를 갖고 「미일안보조약페기」 와 망국사관을 만든 「동경재판」 을 불식하라고 외친다.
야스쿠니 (정국) 신사참배를 강행한 나카소네 (중증근) 전총리등 일본 원로정치인은 사실 따지고 보면 일본보수우익의 맥을 잇고 있는 「사무라이」 로 「일본의 영광」 「일본의 고토회복」이 주된 관심사다. 겉으로는 세계평화와 국제협력을 얘기하지만 21세기에는 미국·유럽과 함께 세계정치를 요리할 「초강대국 일본」 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한 우익단체 지도자는 『북방영토 (4도) 다음에는 한국의 독도』 라고 공공연히 얘기한다.
세계최강의 경제대국으로 국군까지 갖게 된 군사대국 일본이 유엔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세계질서를 요리하게 되면 잊혀졌던 한국과의 영토분쟁 「독도는 우리땅」 싸움이 재연되기를 은근히 꿈꾸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일본외무성산하 연구기관인 아시아경제연구소에는 과거 만주식민의 이론적 연구기관이었던 만철조사부와 조선총독부의 각종 서류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으며 이를 토대로 「21세기의 새로운 세계와 일본의 위상」 을 찾기에 밤낮이 없다.
최근 갑자기 각광받고 있는 북한내 두만강 접경지역과 청진항등 동해연안에 대한 연구팀이 벌써 수년전부터 구성돼 「북한·일본국교 정상화이후」 에 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동경=방인철특파원】
유럽
"발등의 불" EC통합 주력
회원국 불협화음 조정 안간힘
유럽인들이라고 보다 풍요로운 21세기에 대한 관심이 없을리 없다. 그러나 이들은 「21세기 전략」 이란 말에 우선 혀부터 내두른다.
유럽 각국은 21세기 전략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지금 이러한 「장기전략」을 논의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소련및 동유럽의 급속한 변화는 물론 바로 코앞의 현실로 닥쳐온 유럽공동체 (EC)통합에 대비하는 「단기전술」 이 그들에게는 더 시급한 것이다.
유럽인들이 단기전술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EC다. 그러나 유럽통합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한마디로 동상이몽이다.
자크 들로르 EC집행위원장은 『지난번 걸프전과 유고사태등에서 회원국간에 불협화음이 노출되는등 정치통합의 어려움이 드러났으나 중립국인 아일랜드를 제외한 모든 회원국이 공동의 외교·안보정책수립에 찬성하고 있어 정치통합이 예상보다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 낙관했다.
그러나 정치통합이라는 총론엔 일치한다해도 각론에선 국가별로 이해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심지어 「유럽통합이 과연 이뤄질 것인가」 에 대한 의문마저 제기되고, 그간 유럽통합의 견인차였던 파리-본 간의 독·프랑스 추축이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있다.
가장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은 역시 경제분야다.
EC 전체적으로 89년 3·6%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이 90년 2·5%로 떨어졌고 올해는 1·5%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등 최근들어 경제여건이 악화되자 각국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 가운데 특히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외국자본의 유치경쟁이다.
통일독일은 구동독 지역에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현재까지 미미한 수준이다.
외국자본 유치에 가장 성공한 유럽국가는 영국. 영국상공부 발표에 따르면 89년 한햇동안 일본 기업을 중심으로 3백여개의 외국기업이 영국에 진출, 6만명의 고용을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과 지가, 그리고 언어상 유리함때문이며 여기에 영국정부의 적극적인 유치노력이 크게 기여했다.
프랑스는 최근 발표한 일련의 투자유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호주의적 이미지때문에 외국자본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소련·동유럽의 대변혁과 독일의 통일로 EC내의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소련·동유럽과 근접해 있는 독일은 난민유입방지라는 현실적 이유, 그리고 이들이 장차 독일의 거대한 상품시장으로 등장할수 있다는 경제적 이유가 맞물려 이들에 대한 지원에 적극적이다.이에반해 소련·동유럽이 독일의 영향권에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프랑스와 영국의 견제가 만만치 않다.
이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의 불일치를 노출하고 있는 이들이지만 EC역외, 특히 일본의 경제적 「침공」 이나 미국의 강자논리에는 한목소리로 맞서고 있다.
이밖에 안보문제에서 잠정적으로는 미군의 유럽주둔과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의 조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서구동맹 (WEU) 의 활성화가 본격논의되는등 궁극적으로 유럽의 안보는 유럽인의 손으로 지킨다』 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처럼 21세기를 대비하는 유럽의 전략은 현 시점에서 EC및 유럽통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구체적인 공동의 통상외교·안보정책은 이를 기초로 현재 만들어져 가고 있는 단계라 할 수 있다.
【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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