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와 경쟁에 남녀가 따로 있나요"|그래픽디자인회사 김은조 기획실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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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여성이 회사를 꾸린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한 한해였어요. 일감을 끌어오랴, 직접 그래픽작업을 하랴, 또 사무실과 경비관리까지 도맡아야하니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들었죠.』 그래픽디자인 회사인 IVIS사 기획실장 김은조씨(27·여). 김씨는 1년전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회사를 차렸다. 직원은 고작 3명. 회사라는 이름조차 어울리지 않아 김씨는 사장 없는 회사의 기획실장이다.
그래픽디자인은 회사의 심벌이나 로고를 새로 만들고 선전 팸플릿을 편집하는, 아이디어와 색채감각을 중요시하는 업종이다. 서울대심리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자신의 적성에 그래픽디자인이 맞다고 판단,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을 마치면서「스스로 일을 꾸려 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차린 김씨.
그러나 가장 여성적이라고 하는 그래픽디자인 분야에까지도 여성에 대한 편견은 뿌리깊게 남아있었다.
김씨는『스스로는「일생을 바쳐야 할 본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 결혼하기 전까지 비전문가의 취미나 부업정도로 대할 때는 속이 상한다』고 털어놓았다.
올해 초 H호텔의 대형프로젝트 입찰 때에는 규모에 비해 엄청난 욕심을 냈다. 밤을 새워 작업한 끝에 품평회에서 좋은 점수를 따고 가장 낮은 값을 제시했지만 결국 이름에 밀려났다. 능력보다는 안면과 경력의 두꺼운 벽을 실감했다는 김씨는 결국『그동안 많이 컸다』는 주변의 칭찬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김씨는 지난 한해동안 4개 중소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별다른 출혈 없이 버틴 것만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인력난이 깊어지면서 여성인력 개발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김씨처럼 스스로 일어서려는 여성들은 2중의 벽에 부닥쳐 힘겨운 걸음마를 하고 있다.
10평 남짓한 김씨의 사무실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가의 매킨토시 컬러그래픽 컴퓨터와 프린터가 놓여있다. 국내에서도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회사지만 최근 해외를 돌아본 김씨의 눈은 세계를 향해있다.
『그동안 남긴 이익을 모두, 조금 무리를 하면서까지 컴퓨터를 사들였습니다. 결혼해도 그만둘 생각이 없으니 앞날에 대해서도 투자를 해 야죠. 국제경쟁력 앞에서는 남자, 여자가 없으니까요.』 <글=이철호 기자·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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