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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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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에는 예술가 백남준의 선구자적 고뇌와 갈등이 담겨 있다. 그의 사기는 실험과 창조를 위한 사기였으며 끝내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을 창시했다. 따라서 그의 사기가 사기라면 전 인류를 속여 넘긴 '고등 사기'다. 비운의 천재화가 이중섭도 자칭 '사기꾼'이었다. 그는 전시회에서 작품을 팔고는 '잘도 속여 넘겼다'며 쾌재를 불렀다. 죽음에 임박해서는 "내가 그림을 그린답시고 세상을 속였다. 놀면서 공밥을 얻어먹고 다니면서 뒷날 무엇이 될 것처럼 사기를 쳤다"고 한탄했다. 이 말은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의 비탄과 다름없다. 그러나 그의 50주기가 되는 지난해에는 '이중섭 위작사건' 파문으로 변변한 전시 한 번 열리지 않았다.

백남준의 '고등 사기'나 이중섭의 '낭만 사기'가 그리워지는 것은 저열한 사기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표절이나 예술인의 대필 같은 사기가 관행으로 우겨지고, 이중섭 같은 유명 화가의 가짜작품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사기라 함은 나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남을 속이는 행위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따져 본다면 자신의 명성이나 치부를 위해 독창성이나 진정성이 없는 문화예술 상품을 공급함으로써 순진.몽매한 소비자들을 오도하고 끝내는 불신에 빠뜨리는 짓이다. 문화예술이라는 상품은 저잣거리의 일반 재화와 다르기 때문에 사기에 따른 폐해가 막심하다. 보통 재화는 소비를 통해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고 소진된다. 문화예술 시장에서의 재화는 한 사람의 소비를 통해 소진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를 방해하지 않는 소비의 비경합성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문화예술 상품은 그 소비행위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소비'가 아니라 '향유'이기 때문에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므로 문화예술을 참칭하여 공공을 우롱하는 자는 '공공의 적'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기초를 마련한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이기심이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 제조업자들의 박애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돈벌이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면서 물질적 이득과 부를 성취하기 위한 욕심과 경쟁이 존재하는 자유경제를 옹호했다. 공공이익의 증진은 자본가들이 애쓸 때보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릴 때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이기심은 부도덕과 다르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러면서도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존재가 되기 위해 분별력 있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 즉 자기애였다. 그는 덧붙였다. "인간 사회는 이를테면 거대하고 육중한 기계다. 그리고 도덕은 그 기계의 바퀴가 굴러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윤활유다. 부도덕은 바퀴 여기저기를 삐걱거리게 만드는 녹이다." 문화예술을 빙자한 사기는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문화예술 시장을 피폐하게 만든다. 신뢰의 망실로 시장이 망가지면 문화고 예술이고 설 땅이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의 징벌은 가차 없다.

김순응 K옥션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