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대희 완전한 사랑] 남의 침실 엿보고 싶은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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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며칠 전 자기 집 침실에서 부부 간에 행한 성행위가 누군가가 설치한 몰래카메라에 찍혀 그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됐다는 피해자 이야기가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았다. 예전에 미스코리아 출신 O양이나 인기 상승 중이던 미녀 가수의 정사 장면을 담은 동영상 이야기가 장안을 휩쓸었던 일이 있었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이렇게 자주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하기야 도청이 횡행하는 세상이니 그 방면에 남보다 조금 앞선 기술력을 가진 사람이면 남의 침실 엿보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 같은 것이어서 기술력을 뽐내고 싶어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또 과거 연예인의 경우 매니저 남성이 포르노 판권 판매로 일확천금을 노렸거나, 아니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여자를 자기 손에 꽁꽁 묶어두는 수단으로 당사자 모르게 정사 장면을 찍어 두었다는 소문도 있다.

이런 규시(窺視) 행위는 어린 시절에도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조금 짓궂은 사람이라면, 이와 비슷한 장난(?)을 한두 번쯤 자행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화장실을 가로지른 나무 칸막이 틈에 작은 구멍을 뚫어 놓고 그것을 통해 타인의 용변 모습을 훔쳐보는 행위는 엄밀히 보아 지금의 몰래카메라와 그 원류를 같이한다.

주석을 달자면 화장실 벽에 음란성 글이나 그림을 그려 놓는 것은 육두문자를 사용한 욕설과 마찬가지로 성행위를 하고 싶다는 충동의 다른 표현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정신과학에 의하면, 남녀를 불문하고 유년시절에는 이성의 성기를 훔쳐보고 싶은 욕구, 즉 규시욕(窺視慾)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추측건대 유년 시절에 소꿉놀이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무렵에는 남녀가 성적으로 어떻게 다른지조차 잘 모를 때다. 처음에는 여자 아이가 요리를 하고 사내 아이는 그 옆에서 식사할 준비를 하고 기다린다. 그러다가 한 단계 더 발전하면, ‘내 것을 보여줄 테니 너의 것도 보여 달라’는 식의 장난도 서슴없이 하게 된다.

그래서 아직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한 성기를 서로 들여다본다. 성기가 가진 경이로움에 매료되어 저지르게 되는 일종의 탐색활동이다. 지금도 외국의 대도시 포르노 타운에서 미녀들이 나와 자신의 여성기를 보여주는, 이른바 라이브 쇼란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시절의 규시욕에서 출발한 것이다.

세계적인 문호 H G 웰스는 이를 가리켜 ‘20세기의 미신’이라고 부르고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난했다. ‘학교에서 생리학을 배우는 여학생들은 교사의 강의가 성기에 관한 대목에 이르게 되면 번번이 중단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모두의 몸에 성기가 달려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교사만은 그 대목에서 시치미를 떼는 것이다. 사소한 것까지 파고드는 생리학 강의가 인체의 모든 부분을 빠짐없이 다루면서도 성에 대해서만은 묵비권을 행사한다. 그래서 모든 남녀를 다 불구자로 만들어 버리니 이 얼마나 불합리한 처사란 말인가.’

웰스의 이런 주장에 고무된 사람들이 성교육의 실시를 과감하게 부르짖기 시작했다. 성기의 구조나 기능에 관한 출판물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고, 그것들이 골목 안 작은 서점까지 진출하게 된 것은 이런 선각자들의 노력 결과다.

그러나 성을 일부 인사가 하는 짓처럼 저속한 관능적 욕구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 성이란 것이 성기와 성적 욕구라는 정신작용의 합작이므로 성기의 기능과 해부학적 구조 쪽에서만 관조해서는 올바르게 이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성기에서 지나치게 에로틱한 측면만 생각해서는 안 되며, 그것이 정신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성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폭 넓게 이해하는 태도가 긴요하다. 이런 입장에서 성행위의 심리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참다운 성생활을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랑이 없는 섹스를 경계하라는 말도 그런 의미에서 강조되는 것이라고 본다.

곽대희 피부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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