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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 "버버리 너마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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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버버리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마라." "버버리는 영국에 남아 있어야 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 버버리가 웨일스 지방에 있는 공장을 문 닫고 중국으로 옮겨가려 하자 근로자는 물론 지역 주민들까지 들고 일어났다.근로자들의 시위는 14일 런던, 미국의 뉴욕.시카고.라스베이거스, 프랑스 파리와 스트라스부르의 버버리 매장 밖에서도 열렸다고 BBC방송은 보도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지역 경제가 위축되는 걸 우려하는 것이다. 이 공장에는 300여 명의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다. 공장 폐쇄 반대 운동에는 찰스 왕세자, 피터 하인 북아일랜드 담당 장관, 가수 톰 존스,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 영화배우 마이클 신과 에마 톰슨 등 각계 유명 인사들도 동참했다.

유럽 의회의 영국 노동당 소속 의원들도 '버버리는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구호가 적힌 대형 밸런타인 카드에 동료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버버리 본사에 전달키로 했다.

버버리는 트레오치 공장을 올 연말까지 폐쇄한다고 지난해 9월 발표했다. 공장을 폐쇄한 뒤 18억원의 가치가 있는 공장 부지는 지역사회에 헌납하겠다고 덧붙였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버버리가 영국에서 폴로형 티셔츠 한 장을 생산하는데 11파운드(약 2만원)가 들지만 중국에서는 4파운드(약 7200원)면 된다는 것이다.

공장 폐쇄에 반대하는 이들은 버버리가 영국의 대표적 브랜드인 만큼 가능하면 공장을 존속시켜 지역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매출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책임감을 갖고 사회적.환경적.윤리적인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매출이 늘고 있는데도 지역 근로자들을 외면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버버리는 지난해 4분기 매출이 전년도보다 22% 늘어난 2억600만 파운드(약 3600억원)를 기록했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핸드백과 액세서리가 성장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 성장에 힘입어 세계 각 도시에 매장도 늘려가고 있다. 조만간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오스트리아의 빈에도 새 매장을 열고, 맨체스터와 체코 프라하의 기존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영국 노동단체의 한 간부는 "이렇듯 상황이 좋은데도 공장 폐쇄를 결정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웨일스 출신 유럽의회 의원인 모간 엘루네드는 "버버리는 현재 높은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며 "트레오치 공장이 중국으로 떠날 이유가 전혀 없다. 버버리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감을 중시해 공장을 계속 웨일스에 남겨두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버버리는 성명을 내고 "트레오치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해도 그곳의 생산량은 버버리 전체 제품의 10%도 안 된다"며 "대표 상품인 트렌치코트를 만드는 요크셔 공장의 600명을 포함한 전체 직원 4650명 중 거의 절반은 영국 사람"이라고 말했다.

◆버버리(Burberry)=영국의 품격을 대변한다는 평을 듣는 대표적 패션 명품 브랜드다. 체크 무늬와 방수 가공한 레인코트로 유명하다. 브랜드의 창시자인 토머스 버버리가 1856년 런던 남쪽인 햄프셔주에 포목상을 열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현재는 의류뿐 아니라 핸드백.구두까지 생산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걸쳐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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