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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키즈] 친구의 춤에는 슬픔이 배어나오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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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서 화원으로 정조의 어진까지 그렸던 김홍도(1745~?)가 땀냄새 나는 서민들의 삶에 눈을 돌린 이유는 뭘까. 중편 동화 '김홍도, 무동을 그리다'는 이런 물음에서 시작했다. 신인 작가 박지숙씨는 김홍도의 풍속화첩을 동화로 꾸미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줄곧 품어 왔다고 한다.

그래서 화첩과 이론서 등을 공부하고, 복식사 책까지 뒤져가며 김홍도의 열살 때 모습과 당시 생활상을 그려냈다. 박씨는 김홍도가 어린 시절 광대패 아이 들뫼와 우정을 나눴고 들뫼의 신들린 듯한 춤사위에서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엿보게 되면서 그 장면들을 화폭에 옮기게 됐다고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다.

들뫼라는 존재와 신동 김홍도가 이익을 만났다는 설정 등은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궁중 화가가 사회풍자까지 곁들인 서민사회의 모습을 그렸다는 데는 분명 결정적 동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작가의 추측은 설득력 있다.

동화 속에서 홍도는 어느 부잣집 잔치에서 들뫼를 만나는 것으로 돼 있다. 신동이란 말에 한껏 자부심을 느끼던 홍도를 향해 들뫼는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라고 비아냥거린다. 그 한마디에 홍도는 자신감을 잃고, 자신의 그림에서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 스승 강세황은 홍도에게 "스스로 해답을 찾으라"는 말을 할 뿐이다.

들뫼에게는 몸이 약하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누이 순님이가 있다. 순님이는 기본적인 틀이나 규격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이 살아있는 그림을 그린다.

외줄 타는 광대, 꼭두각시와 구경꾼들. 모두 천민들의 모습이었다. 홍도는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그림본에도 없는 이런 그림이 진짜 그림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까하는 혼란에 빠져든다.

한편 들뫼는 순님이에게 약 한첩을 지어주려고 도적질에 가담하려 하고, 홍도는 친구를 어떻게 도와야 할까 고민하는 등 소년들이 겪는 갈등도 등장한다. 몸이 아파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얇은 무명 조각으로 추위를 가려야 하는 들뫼와 순님의 딱한 처지를 홍도는 안타까워 한다. 이런 이야기 끝에 홍도는 자신의 그림에서 부족했던 것은 그림본에 없는 꿈틀거리는 삶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20여년이 흐른 뒤 홍도가 들뫼의 슬픔이 깃든 웃음을 그려낸 것이 '무동(舞童)'이라는 그림이었다는 것이다.

이 동화를 읽고 나면 그림 속 무동이 달라 보인다. 아이의 표정이 그저 즐거워 웃는 것이 아니라 춤으로 슬픔을 털어내려는 듯 처연해 보인다. 상상력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이 작품이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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