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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시조|관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최중태
퇴근길 번지내 투입 우편물을 집어들고
행여나 반가운 소식 있는 저녁상 머리
바쁘다 알량한 핑계 하나로 잊고 사는 허구헌 날
어쩌다 나의 필요로 편지 한 장 띄울라면
수삼년 묵은 주소에 그간 적조를 후회하며
돌아온 수취인 불명으로 확인하는 우리의 관계

<시작메모>
얼마전 열흘쯤 집을 비웠더녀 우편물이 제법 많이 모여 있었다.
자동차 할부금 고지서에서부터 백화점에서 보낸 아내의 생일축하카드, 선전 팸플릿, 번지내 투입 스탭프가 찍힌 자동차 판매인의 요란한 자기 소개 편지등. 그 가운데는 내가 보낸 돌아온 편지도 있었다. 그 편지 곁봉에 찍힌 이사불명, 수취인불명이라는 빨간 스탬프를 보면서 나는 바쁘다는 핑계 하나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살아왔는가를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 뿐이고 요즘 나는 다시 바쁘다는 구실로 편지 한 장쓰는 법없이 하루 하루를 죽이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인간의 본질적 행위라는 것은 알지만 그놈의 일상이 어디 본질적이어야 말이지.
□약력▲48년 부산출생▲86년 『시조문학』추천완료▲87년 『월간문학』신인상당선 ▲시집『아침 잡수셨습니까』등▲현 한국시조시인협회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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