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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실험, 결과적으로 몸값 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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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13 베이징 공동성명은 북핵 문제 해결의 전환점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북한 핵의 완전한 제거까지는 더 먼 길을 가야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 지적이다. 시작일 뿐이란 의미다. 본사 김영희 대기자가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현 서울대 교수),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와 이번 6자회담의 결과를 긴급 진단했다.

사회 = 김영희 대기자

▶김영희 대기자=우리 당국자는 이번 합의를 '북한 비핵화의 새로운 이정표'라고 했습니다. 이번 합의를 평가해 주시죠.

▶윤영관 교수=이번 합의로 외교를 통한 핵문제 해결의 초입 단계에 진입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 길은 멉니다. 그동안 북한이 추출했던 플루토늄 문제와 고농축 우라늄(HUE) 프로그램, 그리고 이미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핵무기를 북한이 얼마나 분명하게 신고하고 폐기해 나갈 것인지 해결되지 않으면 문제가 풀린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고유환 교수=이번 협상은 처음부터 조기 수확이라는 개념에 목표를 뒀습니다. 이미 1월 중순 베를린 북.미 양자회담을 통해 초기 이행조치의 원칙과 대상 정도는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나머지 5개국이 초기 단계의 상응조치를 어떻게 할지에 집중할 수 있어 협상이 비교적 쉬웠던 것 같습니다.

▶김=북한은 왜 이번 협상에 응했다고 보십니까.

▶윤=북한 입장에선 잃을 게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선 핵실험을 했고 핵을 보유하고, 플루토늄도 만들어 놨습니다. 다만 경제난과 이로 인해 닥친 경제 제재를 타개할 필요가 있다는 계산도 했을 것입니다. 해결에 따른 남한의 지원, 중국의 지원 등도 고려해 적극적으로 나왔다고 봅니다.

▶고=북한은 핵실험으로 사용할 카드가 늘어나면서 초기 이행조치로 제네바 합의 때와 유사한 지원을 얻어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핵실험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몸값을 올린 것이지요.

▶김=북한이 장사를 잘했다는 의미인가요.

▶윤=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외교는 이념을 배제하고 실용주의적,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네오콘은 '선과 악'이라는 관점에서 외교정책을 다루다 보니 타이밍을 잃고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많은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김=북한은 제네바 합의 파기를 비롯해 그간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는 행동을 했습니다. 북한이 핵시설 동결을 넘어 폐쇄까지 갈 수 있을까요.

▶윤=실무그룹이 설치돼 그 안에서 이른바 폐쇄에 이르는 선후 문제를 논의할 겁니다. 거기서 어떤 순서로 상응조치들을 연결할 것인지가 핵심입니다. 따라서 비핵화 실무그룹의 논의를 지켜봐야 폐쇄에 이를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고=북한 핵은 두 가지로 나눠 봐야 합니다. 하나는 초기 이행조치에 해당하는 핵 관련 시설에 대한 일종의 동결.봉인.불능화.해체 작업이고 다음은 핵무기 폐기 문제입니다. 두 번째가 앞으로의 과제이며 별도의 협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북한으로서도 제네바 합의 때와는 달리 합의 이행에 더욱 적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행 실적에 따라 보상의 양도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김=초기 조치 합의 내용을 보면 그간 북한이 주장해 왔던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습니다. 결국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바뀐 것인가요.

▶고=변화 조짐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미국은 핵 확산 방지와 비핵화 실현이라는 궁지에 몰렸습니다. 시간을 끌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하니까요.

▶윤=2005년 9.19 선언 당시 기회가 있었는데 미국 네오콘 강경파들의 거부로 상황이 성숙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미국의 이번 중간 선거로 정치 지형의 변화가 생겨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또 풀리지 않는 이라크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동기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이 거부해 왔던 북.미 양자회담에 응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2차 북한 핵 위기는 2002년 북한의 HEU 계획 시인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는데 이번엔 이에 대한 언급이 일체 없습니다. HEU가 향후 문제될 가능성은 없나요.

▶윤=2002년 12월 한국 정부는 미국이 중유 공급을 중단할 때 '가장 시급하고 위험한 프로그램은 플루토늄이다'라고 반대했습니다. 북한의 기술로 봐서 우라늄 프로그램은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리지 모르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이를 문제 삼으면 북한에 제네바 합의를 깨뜨리는 구실과 빌미를 주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도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밀어붙여 북한이 핵실험까지 간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반성의 여지가 있습니다.

▶고=HEU 문제는 2002년 10월 제기된 직후 사실상 미궁에 빠졌습니다. HEU 부분은 현안에서 뒤로 밀리고 플루토늄 방식으로 핵실험을 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대북정책의 모순입니다. HEU 문제나 북한의 핵무기 폐기 문제를 논의하면 또다시 미궁에 빠지고 협상이 안 됩니다. 미국엔 북한의 핵 관련 시설의 가동을 멈추는 게 최우선입니다. 핵시설을 가동하면 플루토늄의 양이 늘고 사실상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목표치를 핵시설의 동결과 이전 방지에 맞춘 듯합니다.

▶김=대북 지원 분담금을 놓고 진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각국의 입장 차이가 전체 구도를 무너뜨리지 않을까요.

▶윤=2003~2004년만 해도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은 일본이 납북자 얘기를 하는 것에 부정적이었습니다. 핵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죠. 현재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도 이슈로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앞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에서 중요한 몫을 해야 할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런 측면을 고려하면 북.일 간에 적절한 타협이 이뤄지고, 북.미 간에도 적절한 타결점을 모색할 수 있도록 주변국이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고=미국의 경우 의회의 예산 승인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은 민주당이 다수 의석 차지하고 있어 북한이 나름대로 성실히 행동하면 미국 의회도 그 정도는 분담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과거엔 50만t을 미국이 혼자 부담했지만 이번엔 5자가 분담키로 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국내 여론을 의식해 한발 빠졌지만 결국 참여할 것입니다.

▶김=우리는 지난해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시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이번 합의가 대북 지원 재개에 영향을 끼치고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타게 할까요.

▶고=그렇게 될 가능성 높습니다. 그러나 핵실험으로 남북 간 신뢰가 손상되고 국민 여론도 악화됐는데 아무 일 없었던 듯 당장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취하고 있는 상응조치와 남북관계 조치가 조화돼야 합니다. 우리만 너무 빨리 나가 국제사회가 서명한 합의문의 이행 구속력을 떨어뜨리면 안 됩니다. 정부도 신중하게 6자회담 틀과 남북 간의 특수 논리, 보편과 특수 논리 사이에 조화를 찾아가야 합니다.

▶김=2.13 합의로 남북 정상회담의 물꼬가 트일 가능성은 없나요.

▶윤=북한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북한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우리가 말이나 행동에 무게를 담아서 대하는 게 중요합니다. 북한은 남북 경협에는 적극적이었지만 안보 문제는 미국이 파트너란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안보 문제의 진지한 파트너로 인정할 때 남북 정상회담에 모멘텀이 실리고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고=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합의로 북핵 해결의 전환점을 마련했으니 한반도 정세에도 큰 변화가 가능하고 정상회담을 통해 풀 수 있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둔 시점을 고려하고 지난해 11월 부시 대통령이 언급했던 종전선언 문제 등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남.북.미 3국의 대통령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벤트를 만드는 게 효과적일 것입니다.

정리=이가영.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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