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얼마나 챙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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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타결 직후인 13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천영우 우리 측 수석대표(右)와 김계관 북한 측 수석대표가 악수를 하던 중 김하중 주중대사(左)가 좀 더 가까이 서서 악수하라며 김 대표를 밀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북한을 2.13 합의에까지 이끈 데는 중유.식량 등 대북 지원 보따리가 큰 역할을 했다. 북한이 최악의 경제난을 넘어서려면 6자회담 참가국들이 제시한 핵 동결.폐기 시간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와 지원 중단으로 어느 해보다 혹독한 겨울을 지내고 있다. 에너지난.식량난.외화난 등 이른바 3난(難)이 최악의 수준이다. 특히 에너지 부족은 북한 경제를 빈사 상태에 빠뜨리고 있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에 따라 미국이 연간 50만t씩 주었던 중유는 2002년 10월 고농축 우라늄(HEU) 핵 개발 의혹의 여파로 공급이 중단했다. 북한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기 직전인 88년 320만t에 이르렀던 해외 원유 도입량은 2005년 52만3000t으로 곤두박질쳤다.

800만㎾로 일컬어지는 발전 설비 능력도 20~30%밖에 가동되지 않고 있다. 여덟 곳의 대형 화력발전소 가운데 한 곳만 제대로 가동 중이다. 수력발전 의존도가 61%나 돼 갈수기인 겨울철에는 전력난이 극심해진다. 그 바람에 공장 가동률은 20%대에 그친다.

식량 사정도 어렵다. 우리 정부는 2000년 이후 매년 40만~50만t의 쌀을 지원했으나 지난해에는 50만t의 물량을 보류했다. 그 바람에 식량 부족 규모(필요량 520만t)는 90만~155만t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동결 등 금융 제재까지 더해져 경제난의 탈출구가 꽉 막힌 상태다. 정부 당국자는 "김계관(외무성 부상) 수석대표를 비롯한 북측 대표단이 핵 폐기 의무는 최소화하되 보상 물량은 극대화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북한은 중유 5만t을 시작으로 핵시설의 불능화 단계에서는 중유.쌀.비료 등을 챙길 수 있게 됐다. 한국 정부는 핵실험 이후 중단했던 쌀.비료 지원을 재개할 것이 확실시된다.

무엇보다 조만간 BDA 문제가 해결돼 통치자금의 숨통이 터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핵시설 폐쇄와 불능화를 이행할 경우 북.미 간 협의를 통해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빠지고 적성국 교역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대미.대일 관계 개선에도 나설 수 있다.

북한의 외교 라인으로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5회 생일(2월 16일) 선물을 챙기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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