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힘」확인한 소 사태/국제(지난주의 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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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일천하로 끝난 쿠데타/군일부 반기·개혁파 항거에 굴복/옐친 입김 강화… 고르비 입지 줄어
소련사태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한 주였다.
19일 새벽 쿠데타 발생부터 21일 쿠데타 실패소식이 전해지기까지 전세계는 소련의 상황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실로 세계를 뒤흔든 3일간이었다.
이번 쿠데타는 당·군·내무부·KGB·군산복합체 등에 포진한 보수강경파가 주도했다. 이들은 20일로 예정된 신연방조약 체결을 저지하기 위해 비상수단을 쓰기로한 것이다.
신연방조약이 체결될 경우 지금까지 연방정부가 가지고 있던 권한의 95%가 공화국으로 이양,연방정부가 크게 약화될 것이 분명해짐에 따라 연방레벨조직인 이들이 볼 결정적 피해를 봉쇄하기 위한 마지막 저항이었다.
쿠데타 지도부인 8인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크림반도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건강상 이유로 집무가 불가능하게 됨에 따라 야나예프 부통령이 승계한다고 발표,수도 모스크바등 주요도시에 연방군 부대를 진주시켰다.
○대규모 군중집회 열어
기선을 제압당한 개혁파는 곧바로 전열을 정비,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을 중심으로 단결했다. 옐친 대통령은 대규모 군중집회를 소집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총파업을 호소했다.
20일 정오 모스크바에서 15만명,레닌그라드에서 20만명이 운집한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렸으며 시베리아 탄광·유전지대에서 파업이 시작됐다.
모스크바 군중집회에서 엘친 대통령은 보수파의 범죄행위를 규탄하고 이들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을 촉구했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인간사슬을 형성,탱크에 부딪치는 등 처절한 투쟁을 계속했다.
특히 옐친은 불굴의 의지로 맞서 상황을 역전시키는 한편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쿠데타 지도부는 예상못한 시민들의 저항,군내부의 분열 및 이탈 등으로 곤경에 처했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쿠데타를 비난하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복귀를 요구하는 한편 대소 경제협력 중단조치를 취했다.
○내무장관 자살로 속죄
21일 오전 쿠데타 실패조짐이 두드러지자 8인 지도부는 탈출을 시도했으나 전원 체포됐다. 주모자중 하나인 푸고 내무장관은 체포직전 자살했다.
이번 쿠데파 실패이유로 쿠데타를 주도한 보수파의 계획미비,군부내 이견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소련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이를 지키려는 굳은 용기 그것이다.
이같은 태도는 과거의 수동적이고 복종적이던 소련인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쿠데타 실패는 민주시민으로 새로 태어난 소련 국민들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이번 쿠데타 실패로 가뜩이나 약세에 몰려있는 당·연방정부의 위치를 더욱 열세에 몰아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산당은 몰락의 길로
특히 소련 공산당은 이제 몰락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당은 지도적 위치포기,탈당자 속출로 극히 어려운 형편에 있었다.
이에 반해 옐친이 이끄는 개혁진영과 각 공화국은 훨씬 강화된 입장에 설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이번 사태로 많은 것을 잃었다. 그동안 보수와 개혁 양진영을 오가면서 정국을 조종·운영해온 그는 앞으로 완전한 개혁입장에 설 수밖에 없으며,이 경우 옐친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자기손으로 임명한 인물들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인간적인 충격도 그를 앞으로 상당기간 혼미에 빠뜨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옐친이 이끄는 개혁진영은 이번 승리를 계기로 보수파의 반대없이 본격적인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특히 이미 파탄상태에 이른 소련 경제는 한시가 급한 지경이며,이의 극복을 위해 서방측의지원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하나의 혁명이며,더 큰 시련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정우량 외신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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