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형 반란', 반년 천하?

중앙일보

입력

“집값이 더 오를까 불안해서, 혹은 싼 맛에 매수세가 달려들었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불과 5개월도 되지 않아 ‘소형 평형의 반란’이 완전히 진압된 느낌입니다.”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G공인 관계자는 “이곳 소형 평형 아파트 호가가 최근까지의 강세에서 벗어나 최근 몇 일새 1000만원 가량 떨어졌다는 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현상이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호가 하락세에도 매수세가 아예 없다는 것”이라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탔던 서울ㆍ수도권 소형 평형 아파트 시장의 분위기가 최근 들어 급반전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의 전면 실시와 총부채상환비율(DTI) 확대 등을 앞두고 매수세가 자취를 감추면서 거래가 뚝 끊겼다.

일부 지역에선 급매물이 나오고 있어 소형 아파트 매매시장도 본격적인 조정국면에 접어든 상황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소형의 반란’이 ‘반년 천하’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도 나오고 있다.

중대형 평형보다 가격 약세 뚜렷

부동산정보협회에 따르면 2월 들어 서울지역 소형 평형(32평형 미만)아파트 값 약세가 뚜렷하다. 지난주 소형아파트 주간 상승률은 0.01%로 보합권에 머물렀다. 이같은 매매가 주간 변동률은 지난해 8월 마지막 주에 소형 평형 아파트 값이 0.02% 하락한 이후 가장 낮은 상승세다. 같은 기간 중형 평형(32평형 이상~50평형 미만) 아파트는 0.15% 올랐고, 대형평형(50평형 이상)은 0.05%의 상승률을 보였다.

서울ㆍ수도권을 중심으로 소형 평형 아파트 값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강세를 탔다.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재건축 아파트 외 일반 소형 평형 아파트는 값은 중대형 평형에 비해 많이 오르지 않아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이후 상황은 역전됐다. 좀처럼 가격이 오르지 않던 10~20평대 소형아파트가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게 하는 주요 동력인 된 것이다.

실제로 서울ㆍ수도권 소형평형 아파트 값은 지난해 11.15대책 발표 직전 주간 상승률이 무려 2.8%까지 치솟는 등 12월말까지 평균 1.5% 대의 높은 주간변동률을 나타냈었다. 이는 6억원을 초과하는 고가아파트에 대해서는 대출규제가 심한 상황에서 자금력이 떨어지는 실수요자들이 매수세를 주도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크게 바꿨다. 새해 들어서는 오름세가 주춤해지더니 급기야 1월 말과 2월 초에는 주간 변동률이 각각 0.08%, 0.01%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가 크게 둔화되고 있다.

강남권,재건축 하락 영향으로 낙폭 커져

지난해 9월 이후 올 초까지만 해도 오름세를 탔던 강남권(강남ㆍ서초ㆍ송파구) 소형 평형 아파트는 매수세가 뚝 끊기면서 호가가 급락세를 타고 있다. 강남권 소형평형 아파트 값은 지난 주 0.41%나 떨어졌다. 소형 평형 아파트 매매가격 하락세는 지난달 중순 이후 벌써 3주째다. 대신 중형 평형은 0.02%, 대형은 0.01%로 약세를 보였지만, 아직까지 가격이 떨어지는 않고 있다.

소형평형 아파트 값 하락세는 재건축 단지의 급락 영향이 크다. 주로 소형 평형 위주로 이뤄진 강남권 재건축 추진 단지가 큰 폭으로 값이 떨어지면서 전체 소형 평형 아파트 매매가를 끌어내린 것이다.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 13평형은 매매 호가가 7억원 선으로 한달새 3000만~5000만원 떨어졌다. 주공4단지 15평형도 10억500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지만 매수세가 없다. 이 아파트는 한달 전만 해도 11억~11억5000만원을 호가했다. 개포동 개포공인(02-2057-1472) 채은희 사장은 “소형평형 의무비율과 개발부담금 부과 등으로 재건축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은 데다, 지난해 1.11대책 이후 분양가 상한제와 1인1건 대출 규제 등의 ‘악재’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매수세가 꺾였고, 호가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송파구 가락동 가락시영아파트도 하락세가 뚜렷하다. 가락시영1차 17평형은 지난 연말 대비 2000만~3000만원 떨어져 7억6000만원선이다. 가락시영2차 17평형도 한달 전보다 3000만원 내려 8억6000만원을 호가하지만 매수세가 없다. 가락동 집보아공인(02-409-3900) 박호식 사장은 “지난해 너무 올라버린 집값으로 매수 부담이 크게 늘어난 데다 집값의 추가 하락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재건축 단지 가격이 오름세를 타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강북권, "분양가 상한제로 매수세 뚝 끊겼어요”

강북권(강북ㆍ노원ㆍ도봉ㆍ성북ㆍ은평구) 역시 소형 평형의 약세가 두드러진다. 이들 지역은 지난해 11~12월 평균 주간변동률이 1.5%대에 가까웠으나 올 들어 상승세가 주춤하더니 이달 초에는 주간 변동률이 0.42% 수준까지 낮아졌다.

지난 11.15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강북권은 오히려 거래가 늘고 오름세가 확대되는 등 강세장을 이어갔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데다 대출 규제가 덜해 실수요자 중심의 매수세가 몰렸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의 경우 경전철 건설과 뉴타운 개발 등 개발 호재도 매도 호가를 높이는 요인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매수ㆍ매도자간 호가가 크게 벌어지면서 거래가 급감하는 상황이다. 급매물도 많지는 많지만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노원구 상계동 청암2단지 25평형은 한달 전보다 500만~1000만원 정도 가격을 낮춰 1억7500만~1억9500만원 선에 매물이 나오고 있다. 상계동 N공인 관계자는 “자금이 넉넉지 못한 수요자가 많은 강북권의 경우 6억원 이하의 주택에 대해서도 DTI가 적용되는 등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면서 “최근 소형평형 위주로 급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사려는 사람은 없다”고 시장분위기를 전했다.

은평구 수색동 대림아파트 25평형은 올 초 시세보다 500만원 정도 낮춘 2억4500만~2억5000만 선에 매물이 나왔다. 우방아파트 25평형 역시 호가를 500만~1000만원 정도 낮춰 2억3000만~2억4000만원에 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수색동 샘공인(02-307-2411) 김충권 사장은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매수자들의 관망세가 짙어졌다”며 “계절적인 비수기와 맞물려 당분간 소강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천구 신월동 상지공인(02-2698-8925) 이승범 사장은 “집값이 조정국면에 접어들면서 매수세가 주춤하자 집값 하락을 기대하는 주택 수요자의 상당수가 전세로 돌아서거나 전세 재계약이 늘면서 소형 평형 매매 호가가 지속적인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지역도 매수세ㆍ호가 ‘뚝’

경기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11월 주간 평균 상승률이 1.7%를 넘어섰지만 이달 들어서는 주간 변동률이 0.11%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특히 성남시는 지난 주 0.32% 떨어졌고, 고양(-0.03%)ㆍ과천시(-0.18%)도 하락세를 나타냈다.

고양시 덕이동 태영아파트 31평형은 3억5000만~3억8500만원선으로 이달 들어 500만~1000만원 호가가 빠졌다. 고양시 화정동 옥빛마을 주공15단지 26평형도 보름새 호가가 최고 1000만원 빠져 1억6500만~1억9000만원 선이다. 화정동 G공인 관계자는 “9월 이후 모든 아파트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분양가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소형 주택의 주요 수요층이었던 무주택자들이 청약에서 유리한 무주택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주택 매수를 포기하고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내집 마련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형아파트 추격 매수에 나섰던 수요자들이 분양가상한제와 청약 가점제 등의 영향으로 다시 전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것이다.

과천도 재건축 단지가 속락하면서 소형 평형 매매 호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과천 별양동 주공6단지 27평형은 11억3000만~12억5000만원으로 일주일새 2000만~3000만원 가량 떨어졌다. 별양동 S공인 관계자는 “이달 들어 매매를 한 건도 못했다”며 “재건축 매물은 쌓이는 반면 매수 문의는 계속 줄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값 ‘소형의 반란’은 끝나나?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 같은 시장상황이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유엔알 박상언 대표는 “상반기까지는 시장 분위기를 바꿀 만한 큰 재료가 없어 약보합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종합부동산세 부과를 앞두고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6월 전에 더 쏟아져나올 것으로 보여 한 차례 더 집값 하락 압력을 받게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올해 종부세 과세 표준이 80%로 높아지면서 다주택자들이 6월 이전에 비인기지역의 소형평형 아파트를 처분하려는 사례가 늘 것으로 보여 소형 아파트 값이 상승 반전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반론도 없지 않다. 부동산퍼스트 곽창석 전무는 “올해 소형 신규 입주물량이 전국적으로 전년 대비 30% 가량 줄어들 전망”이라며 “소형 평형 공급물량 감소는 소형 평형 매매가격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영D&R 조우형 사장은 “건설업체의 소형 아파트 공급분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희소 가치 측면에서 중대형보다 이점이 있다”며 “지금은 시장 조정기여서 수요가 주춤하지만, 설 연휴 이후나 봄 이사철 때 전세시장이 불안해지고 집값이 다시 오를 기미를 보이면 소형 평형 수요는 빠르게 되살아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조인스랜드 조철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