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교과서에 박지성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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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월 신학기부터 전국 일선 고교에 배포되는 고교 '경제' 교과서 37쪽. 영국 프리미어리그 박지성 선수가 볼을 차는 컬러 사진 아래엔 경제학 용어인 '비교우위'가 설명돼 있다. "남보다 더 잘하는 일이나 분야에 특화해서 일을 할 때 '비교우위'라고 한다."

55쪽 읽기 자료엔 "남미는 미국보다 왜 가난하게 사는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여기엔 "남미 국가들은 관료 중심의 스페인제도를, 미국은 시장 중심의 영국제도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란 199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말이 인용돼 있다. 남미에서는 기업들이 관료의 관심을 얻는 데 자원을 우선 투입했지만 미국 기업은 가장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곳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업은 이윤 추구에 눈먼 조직이라는 기존 교과서의 서술과는 차이가 난다.

교육인적자원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1일 이런 내용이 담긴 새로운 고교 경제 교과서를 발간했다. 교과서 이름도 '차세대 고교 경제 교과서'라고 붙였다. 기존 교과서와 비교할 때 딱딱한 이론 중심의 내용은 완전히 사라졌다. 풍부한 사례와 실생활 지식이 담겨 있다. 교육부는 이 책을 일선 고교에 보내 수업 자료로 활용키로 했다.

새 교과서에서는 '반 기업정서'를 부추기는 대목이 삭제됐다. 기존 교과서들은 "재벌은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늘리고, 은행의 돈을 빌려 필요 없는 투자를 많이 함으로써 우리나라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새 교과서에서는 이런 표현을 찾아볼 수 없다.

새 교과서는 교육부와 전경련이 기존 경제 교과서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경제 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해 지난해 2월 체결한 공동협약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교육 내용 개발 과정에는 한국경제교육학회가 참여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만 강조하던 교과서 내용을 뜯어고쳤다"며 "체험 활동이나 경제 실험 등을 강조해 학생들이 스스로 경제 개념과 원리를 깨우쳐 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예컨대 학생들은 학교 댄스 동아리인 '비보이'의 정기 발표회에 필요한 ▶공연 장소 ▶복장 ▶뒤풀이 방법 중 하나를 직접 선택하면서 기회비용 개념을 익힌다. 소득 재분배를 배울 때는 "스웨덴, 젊어서 많이 내고 늙어서 돌려받는다"는 내용을 읽어야 한다. 이 밖에 멕시코의 자본 도피 사례와 한국의 외환위기를 비교하는 수업 활동도 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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