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무현 대통령 - 강재섭 대표 '장군멍군' 공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노무현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30대 검사와 변호사 시절 부산 법정에서 자주 만났다. 술도 마셨다. 30년 뒤 두 사람은 대통령과 제1야당의 대표 자격으로 청와대에서 회동했다. 앞에선 환하게 웃었지만 뒷그림자는 길었다. 민생 문제에 대한 원칙적 합의만 오갔을 뿐 정치 문제에 대한 시각은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9일 회담장인 청와대 본관 2층 백악실의 뒷벽까지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깔렸다. [사진=안성식 기자]

노무현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9일 청와대에서 회동했다. 오전 10시부터 1시간30분간 만났다.

강 대표가 검사이고 노 대통령이 변호사였던 부산 시절, 두 사람은 법정에서 자주 만났다고 한다. 함께 술도 마셨다. 이런 배경 때문이었을까.

회담이 끝나고 일어날 때 노 대통령이 "검사시절에는 사람이 괜찮더니만, 아주 나빠졌다"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이에 강 대표는 "그건 내가 할 소리"라고 받아쳐 참석자들이 한바탕 웃었다. 1년6개월 전 노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대표와의 회동 때와 달리 이번엔 '공동 발표문'이 나왔다.

로스쿨을 도입하는 사법개혁 관련 법과 사학법 등 쟁점 법안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주제가 정치 문제로 옮겨지자 두 사람의 틈은 벌어졌다. 장군 멍군식 양보 없는 공방이 이어졌다.

대선의 해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야당 대표, 그리고 집단 탈당으로 흔들리는 여당에 임기 1년 남은 대통령이 가진 힘의 한계가 표출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강 대표가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자 "열린우리당이 지금 특수 상황이고 대통령은 여당 대표가 아니다"며 "나는 여당에 대해 영향력이 없다"고 했다. 다음은 대화록 요지.

◆선거 중립 문제

▶강 대표="선거 중립 의지를 천명해 달라."

▶노 대통령="대통령은 정치인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의무가 없다. 중립하겠다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선거는 공정하게 관리할 테니 그런 소리는 그만하라. 전과도 없는 사람에게 자꾸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정치 공세다."

▶강 대표="한나라당 후보를 비판하는 얘기는 삼가 달라."

▶노 대통령="국정 파탄이나 잃어버린 10년 등으로 선거 전략 차원에서 나를 공격하지 말라. 먼저 부당하게 공격을 안 하면 절대 공격 않겠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강 대표="대통령은 국정의 중심에 서라."

▶노 대통령="대통령에게 국정의 중심에 서달라고 하는 건 일종의 모욕이다. 국정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런 주장하는 건 기본도 안 된 사람이라는 불신을 깔고 하는 것으로 예의가 아니다."

▶강 대표="민생 문제라도 10년 후, 20년 후 공약을 (대통령이) 내놓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장밋빛 공약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노 대통령="임기 1년 남았다고 접는 게 국가에 득이 되느냐. 그럼 한나라당은 5년짜리 정책만 제시할 거냐."

◆민생과 개헌 사이

▶노 대통령="어디까지가 민생인지 한번 토론해 보자."

▶강 대표="개헌 빼고 다 민생이다.(좌중에 폭소 터짐) 개헌안을 내놓는 건 판 흔들기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 간 틈새나 당론 분열을 꾀하는 것으로 오해받기 쉽다. 한나라당은 내년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하겠다."

▶노 대통령="개헌 발의권을 가진 대통령으로서 발의할 테니 찬성이든 반대든 해달라. 다음 정부에서 한다니 그러면 첫해부터 열심히 토론해 달라. (대통령) 임기 단축 등을 공약해라. 국민에게 도덕적 심판을 받고 싶다."

회담엔 청와대에서 이병완 비서실장.변양균 정책실장.윤승용 홍보수석이, 한나라당에선 전재희 정책위의장, 박재완 대표비서실장.나경원 대변인이 배석했다.

글=박승희.남궁욱 기자<pmaster@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