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언제든 공격당할 위험에 노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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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넘는 해외 지분이 변수…포스코 측 “우호지분 33%로 안전” 주장
포스코 먹힐 수 있나?

지난해 3월 6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포스코가 M&A의 또 다른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칼 아이칸의 KT&G 인수합병(M&A) 시도를 다루면서 포스코를 언급한 것이다.

원론적 내용이었지만 포스코는 M&A가 나올 때마다 항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잠잠하던 포스코의 M&A설은 지난 2월 1일 세계 최대 철강업체인 아르셀로-미탈의 롤랜드 융크(Junck) 경영위원회 위원(전 CEO)이 한국에 오면서 다시 한번 떠오르고 있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지난달 30일 한 행사에서 “이번 방문에서 인수합병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앞서 가지 마라”고 말했다. 그는 “기술 협력도 논의하고, 얼굴도 보고, 공장도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오게 됐다”며 “양사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얘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융크 위원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언론이 이번 방문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잘 알지만, 이 회장과의 만남에서는 양사 간의 일반적인 협력 관계에 대해 논의할 것이기에 확대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구택 회장도 지난해 말 포스코 혁신 페스티벌에서 “얼마 안 가서 포스코에 심각한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회장은 당시 만찬에서 “세계적으로 기업 M&A 광풍이 몰아치고 있으며, 주식회사 개념이 약한 우리나라나 일본과 달리 미국·유럽 사람들은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설마 (세계 1, 2위 철강회사로 합병한) 아르셀로-미탈이 포스코를 먹겠느냐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세계 철강시장은 이처럼 M&A의 거대한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세계 3위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뛰어난 기술과 풍부한 현금자산, 저평가된 주가를 가지고 있는 포스코는 이런 M&A 흐름에 단골로 등장하는 회사다. 한 애널리스트는 “미녀에게 남자들이 계속 구애를 하듯이 포스코는 항상 M&A에서 관심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적대적 M&A 대상 될 수도”

실제 포스코의 M&A 가능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와중에 세계 철강업계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M&A가 이뤄졌다. 2월 1일 세계 철강업계 56위인 인도의 타타스틸이 브라질 CSN을 제치고 영국 최대 철강업체로 세계 9위인 코러스의 인수자로 최종 확정됐다. 이번 인수로 타타스틸은 철강 ‘빅5’에 입성하게 됐으며, 글로벌 철강업계에 다시 M&A 바람이 거세질 전망이다.

포스코의 M&A는 과연 가능할까? 일단 포스코 측은 M&A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자사주 등을 포함한 우호지분이 30% 가까이 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포스코가 국민기업이라는 점, 해외 지분들이 잘게 분산돼 있다는 점 등이 적대적 M&A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다.

하나증권 김태경 연구원은 “포스코의 M&A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지분 구조를 보면 국내 기관의 지분이 27~28% 정도 된다”면서 “우리나라 정서상 기관들이 외국과 합작해 국민기업에 대해 M&A를 시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포스코가 내수시장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점도 M&A 매력을 떨어뜨리는 점이다.

대투증권의 김정욱 연구원은 “포스코의 80%가 내수 기반이다. 따라서 인수하려면 국내시장을 보고 와야 되는데 그게 의문이다. 또 중국 때문에 몇 년 내에 전 세계적으로 공급 과잉 상태가 될 것인데 무리하게 인수합병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포스코의 CFO인 이동희 전무도 “포스코는 그동안 주가도 많이 올랐고 우호지분도 충분히 확보했으며, 마지노선으로 여기던 우호지분 33% 이상도 충분히 확보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는 “물론 적대적 M&A 염려가 확실히 없어졌다고 단언할 순 없겠지만, 싸우면 지지 않을 자신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전무는 또 “포스코는 국가 자산이나 마찬가지고, 이런 국민기업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 같은 생각은 과대망상”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민기업’‘국가 기간산업’ 등의 논리로 포스코가 M&A에서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순진한 일이다. M&A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포스코가 자신의 우호지분을 33%라고 주장하더라도 충분히 적대적 M&A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60%가 넘는 해외지분 소유주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고, 이들이 주가보다 높은 금액으로 매수하겠다고 할 경우 투자자들이 주식을 넘겨주지 말란 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외국인은 그동안 포스코에 지속적으로 배당 확대를 요구해 왔지만 회사는 주주들을 상대로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설득해 왔다. 또 기간산업으로 한국 내 고객 보호 차원에서 일부 가격을 ‘정책적’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외국 주주들에겐 불만일 수 있다.

철강업계에 정통한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대부분 펀드 형태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만약 제3자가 나타나 더 많은 이익을 주겠다고 하면 파는 것이 그 사람들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포스코가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보유분을 자신의 우호지분으로 생각하는 것은 안이한 생각이라는 얘기다. 확실한 주인이 없어 막상 적대적 M&A 싸움이 일어나면 의사 결정이 늦어진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세계 철강업계 ‘짝짓기 계절’

한투증권의 김봉기 연구원은 “포스코는 현금성 자산이 많고, 기술력이 뛰어난 매력적인 상대”라고 평가했다. 김 연구원은 “철강업의 글로벌 M&A는 산업의 트렌드”라며 당분간 M&A 바람이 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대투증권의 김정욱 연구원은 철강업계에 M&A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수급 요인으로 설명했다.

“원료 단계에서 보면 3개 정도의 철광석 원료 회사가 75%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가장 큰 고객 중 하나인 자동차 업계도 3개 자동차 회사가 세계 수요의 50%를 점하고 있다.

반면 철강업계는 지난해 M&A로 태어난 아르셀로-미탈이 겨우 철강시장의 10%를 점유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원료를 살 때도, 제품을 팔 때도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밖에 없다.”

최근 철강업계가 시장 점유율 확대를 통한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일본제철·CSN 등 다른 업체들 역시 공격적인 M&A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실제 세계 2위의 철강업체인 신일철은 브라질 최대 철강사인 우시미나스에 눈독을 들이며 지분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코러스 인수에 실패한 CSN은 콜롬비아 철강업체인 아세리아스 파즈 델 리오(APR)에 입맛을 다시고 있다. 하지만 CSN 역시 러시아의 세버스탈과 미국의 AK스틸이 노리는 새로운 먹잇감으로 제기됐다.

지난해 미탈에 인수된 아르셀로는 2001년 우시노르와 아르베드, 지난해와 올 초 캐나다 최대의 철강업체 도파스코와 에르데미르를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미탈스틸도 2004년 미국의 인터내셔널 스틸그룹, 지난해는 우크라이나의 철강업체 크리보리츠탈을 인수하며 대형 기업으로 몸집을 불렸다. 철강 업계에서는 이 밖에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군소 철강기업들 간에 크고 작은 M&A가 부단히 이뤄져 왔다.

미국의 금융그룹인 씨티그룹이 집계한 ‘유의할 만한’ 수준의 철강회사 간 M&A는 1998년 이후에만 30여 건이 넘는다. 이처럼 포스코는 사방에서 공격당할 수 있다. 철강업계는 요동치고 있는데 포스코가 지금의 지분구조로 안전하다고 얘기하는 걸 믿을 수 있을까?

이석호 기자 luk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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