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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에겐 아직도 먼 「광복」(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한많은 세상을 노예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끝내는 돌아가신 원혼들이시여! 고국의 품에 돌아오시지 못하고 이역의 구천에서 얼마나 고생하…. 비록 초라한 제단이지만 이 순간이나마 마음놓고 드시옵고 편히 쉬십….』
1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3가 파고다공원앞.
부모형제가 일제에 강제로 끌려가 생사조차 확인못한 「유족」들의 모임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회장 김종대·55)회원 4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령들에 대한 위령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제 침묵을 깨시고 힘차게 일어나 삼천리 금수강산으로 돌아와 고인 설움들을 모두 고향산천에 묻으시고….』
추도사를 읽어내려가던 회장 김씨는 말을 채 잇지못했고 그 순간 일부회원들이 영정을 부여안고 흐느끼자 장내는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이윽고 한풀이 굿판이 벌어졌지만 유족들의 한과 분노는 오히려 깊어만갔다.
『「통석의 염」이란 해괴망측한 말장난을 가지고 유족들의 아픔을 달래려고 했다면 어림도 없는 수작입니다. 일본은 유족들에게 배상은 커녕 정식으로 사과한번 한적도 없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과거의 죄악은 까맣게 잊은채 해외에 자위대를 파견하는등 군국주의의 부활에 눈이 멀어있지요.』
이들 가운데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한 50대유족은 『해방되기 1년전 철도국원이었던 아버님이 6살된 철부지인 나를 홀로 남겨둔채 일제에 끌려갔었다』며 『배상은 차치하고라도 유해만 모셔와도 한이 없겠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우리정부도 문제가 있습니다. 수십만 희생자의 피맺힌 절규는 외면한채 65년 한·일국교정상화로 모든것이 일단락됐다는 자세지요. 여태껏 희생자의 원혼을 달래줄 위령탑하나 세워주지 않았어요.』
참석자들은 정부의 무관심도 함께 질타했다.
일제의 포성이 멈춘지 만 46년. 그러나 부모형제의 생사조차 확인못한 희생자유족들에겐 「광복」이란 두글자가 아직도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지고 있는것 같았다.<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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