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1세기누릴 「태평상성」쌓는다〃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북경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화원이 있다. 인공 호수와 축산 및 전각으로 구성된 이 황실원림은 청의 서태후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언젠가 대만의 역사박물관에서 서태후의 초상화를 본적이 있다. 희대의 여걸이라기보다는 평범한 만주 할머니 같은 인상이었다. 이 할머니는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외면한 채 함대를 만들 돈을 유용하여 이 정원을 만드는 등 호사스런 생활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백성의 기름을 짜서 일신의 안락만을 도모한 제후는 이 할머니만이 아니었다. 원·명·청의 역대황제들이 많은 인공을 들여 서태후 이전에 이미 이 정원을 완성했던 것이다. 1900년 의화단운동당시 정치정세에 어두운 서태후는 의화단을 지지하여 영·일·독·불등 연합국에 도전했다. 이것이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침공의 구실을 주었다. 그들의 군대가 이 화려한 궁원 전체를 불사르고 보물을 약탈해 갔다.
서안으로 도피했던 서태후가 돌아와서 파괴된 원을 복구하여 그것이 오늘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화원의 경치는 마치 소주와 항주(나는 가본 적이 없지만)를 연상케 하는 여성적인 아름다움으로 북경의 다른 곳과는 대조적이다. 황성의 한구석에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줄 모르면서도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던 서태후 할머니에게는 북양함대따위가 관심 있을 리 없었다. 이 할머니가 부러워한 것은 북경이 가지지 못한 수향 항주·소주의 광경이 아니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원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됐다.
북경의 서북, 자동차로 세시간 거리에 있는 팔달령. 여기가 만리장성 관광요지다. 영이 가까워짐에 따라 험준한 산맥이 앞을 가린다. 초록빛으로 덮인 거친 저 산에도 등산길이 있을지 상상해 본다. 별안간 왼편에 뭣인가 굵직한 글자로 쓰인 관문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보통의 건조물이 아닌 것 같아 차를 멈추게 하고 자세히 보니 「거용관」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중국인기질 대변>
거용관은 『열하일기』에도 나오는 전국시대부터 유명한 관문. 우리나라의 모든 사신들이 반드시 통과한 산해관이 중국극동의 관문이라면 이 지방 극북의 관문이 바로 거용관이다. 이 관문은 장가구를 비롯한 내몽골 및 몽골의 모든 지방과 연결된다. 2천년의 연륜에 견디지 못해서인지 거용관은 관광객의 눈도 피한 채 쓸쓸히 서있다.
장성 입구에 두 갈래 길이 있다. 동으로 오르는 길과, 서로 오르는 길. 서쪽이 더 길 터이니까 서쪽을 택하여 올라간다. 가파른 벽돌길을 따라 오르면서 가끔 한번 남과 북의 장관을 내려다본다. 간간이 성루가 있다. 북일누·북일누…북칠누. 북칠누에 해발 8백53m라는 표지가 있고 여기에서 길이 막혀있다. 팔달령의 주봉이 1천1백m, 아쉬운 채 돌아설 수밖에 없다.
북육누엔 혼잡한 가운데 안내판이 있다. 모택동이 「불견장성비호한」(장성을 보지 않은 사람은 좋은 사나이가 아니다)이라고 했다는 말이 적혀있다. 그가 무슨 뜻으로 그 말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장성의 위를 보고 아래를 보고, 전국시대와 진한시대의 풍운을 상상해 보니 장성이라는 이 특이한 물건이 중국민과 중국역사의 특성을 웅변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지도를 펴서 장성과 지금의 행정구역을 비교해 보자. 장성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전국시대의 제후들이 쌓은 것이기 때문에 한줄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곳에 따라서는 여러 갈래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보면 그것은 대부분 지금의 몽골자치구와 중국의 북방 각성과의 경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장성은 분명히 남쪽 농경민족인 한족과 북쪽유목민족인 몽골족의 경계선이다. 그것은 농경민족이 그들의 생명과 재산, 산업과 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방어선이었다. 장성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중국은 유사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농업국이고, 중국민은 기본적으로 농민이며, 중국의 문화는 농경문화라는 사실이다. 이 평범한 사실은 중국과 중국문명을 관조하는데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는 공업화이전의 대부분 나라는 농업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좀더 철두철미한 농업국이다.

<″공심은데 공난다〃>
농민은 땀 없이 살수 없고, 땀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농민은 기동력이 적다. 또 농민은 콩 심은 곳에 콩이 나고 팥 심은 곳에 팥이 나는 것을 보고 살기 때문에 그들의 사고에는 비약이 없고 상당한 일관성이 있다.
그들은 유목민 기마병들이 질풍처럼 쳐들어오는데 감당할 도리가 없었다.
그들의 무기는 끝없는 인내와 근면뿐이었다. 몇 대에 걸쳐 앞산을 옮긴 「우공이산」의 고사에 나오는 참을성을 가지고 전국시대부터 진한에 이르기까지 수백년 장성을 쌓았다. 길고 긴 끝없는 산허리에 담을 쌓아서 그들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자는 발상, 그것은 농민의 발상이다.
그 발상의 이면에는 그들이 북으로 쳐들어갈 의사가 없다는 부수적인 일면이 있다. 물론 그들끼리는 서로 싸우고, 모략하고, 갈취하고, 지배하지만 농민의 나라는 밖으로 쳐들어가기보다 밖으로부터의 침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의 고대사가 그것을 보여준다. 중국의 근대사 또한 마찬가지다. 일찍이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저서『The Problem of China』(1922)에서 「서양인들은 중국인이 매우 음흉한 사람들인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으나 남을 속이는 일에 있어서는 중국인들은 심중팔구 서양인들에게 못 당한다」고 했다. 이것은 러셀이 중국과 중국문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가지게된 편견이 아니고 역사상의경험이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농민의 나라인 중국이 유목민족에 당했듯이 상공업과 무기를 가진 서양인에게는 당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지금 중국의 외교정책·경제정책에도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의 외교정책에는 상당한 일관성이 있다. 내가 만난 모든 중국인들이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여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고, 또 한국의 기업이 중국에 투자해 줄 것을 몹시 희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북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당장에 남한과 수교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말했다. 이 입장에는 어디엔가 농민의 냄새가 난다. 그들이 생각이 옳고 그르고는 고사하고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사고에는 좋게 말해 일관성이 있고 나쁘게 말해 비신축적인 일면이 있다.
중국에는 모순이 많다.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모순과 당착이 없는 나라는 없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특히 모순이 많아 보인다. 반만년 농민의 나라가 공업화를 하자니 모순이 표출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사회주의의 원칙을 살리면서 자본주의를 도입하려하고 있다. 그런 길도 찾으면 있을 수 있을 법 하지만 우선은 하나의 큰 모순으로 비춰진다.
근대화를 하기 위해 전통을 버려야 하지만 전통을 다 버려서는 근대화를 할 기반을 잃어버린다. 모두 중국이 당면한 큰 모순이다.
그러나 철학자 에머슨이 갈파하지 않았는가.「모순과 당착을 두려워하는 것은 소인의 짓이다」라고. 우리가 모순처럼 여기는 것은 많은 경우에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독일 속담에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고 보면 모든 것이 순리가 아니겠는가. 우리의 작은 머리로 보면 모순처럼 보이는 것도 알고 보면 당연한 일이 많을 것이다.
어떤 사회과학의 조그마한 이론, 서구사회를 바탕으로 한 논리를 가지고 입견 모순에 가득 찬 중국을 이해하려든다는 깃은 처음부터 무리다. 서구에는 만리장성이 없다. 장성을 만들어 낸 사회의 기반이나 인간의 생각은 서구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흔히 동양인의 사유에선 논리보다 직관을 중요시한다고 하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중국을 어떤 논리의 틀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것보다는 심성을 가지고 관조하는 편이 좋다. 머리만으로가 아니라 머리와 마음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리장성은 농민의 나라 중국이 만들어낸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철두철미한 중국적 산물이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중국에는 만리장성과 비슷한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여러번 일어났다. 모택동의 장정이나 문화혁명도 그 성공·실패는 고사하고 장성을 만들어 낸 지극히 중국적인 사유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장성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장성을 보지 않은 사람은 좋은 사나이가 아니다」는 말의 의미는 장성이 상징하는 세계관으로 세상을 볼 때 자연스럽게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인들은 앞으로의 경제설계에 있어서도 장성을 쌓고있는 것 같다.
중국에서는 현재 l인당 소득을 4백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 한나라의 GNP는 후진국의 경우에는 실제보다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중국의 경우가 그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튼 중국인들은 지난 12년 동안의 연평균 성장률 9.8%가 너무 높다고 보고 앞으로는 약 6%로 성장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보고있다.

<대동사회를 지향>
이 속도로 경제가 성장하면 중국은 금세기 말까지는 의식을 걱정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인데 그들은 이것을 「소강」상태라고 부른다.
「소강」이란 원래 중국의 고전 『예기』에 나오는 말인데 국민이 의식의 걱정을 하지 않는 「정교수명」의 사회상태를 말한다. 21세기에 가서도 순조롭게 경제·사회가 발전하면 2050년에는 거의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할 것으로 그들은 내다본다. 그 상태를 그들은 「대동」상태라고 부르고 있다. 「대동」이란 표현도 역시 『예기』에 나오는데 태평하고 화합하는 상태를 말한다. 「소강」이니 「대동」이니 하는 표현은 단순히 1인당소득만을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니고, 중국인들이 옛날부터 머리 속에 그리는 이상사회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 것같다. 계문도 그의 삼민주의의 이상을 역시 이 대동사회의 달성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표방하는 대동사회에의 길은 대단히 멀다. 그 먼길을 향해 그들은 나름대로의 외정을 하고 있고, 장정을 하는 마음에는 장성의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졸작 칠절일수.
장 성
거용관배만중산
성누@@운무간
군역당연민력갈
태계일모거용관
(거용관 북엔 산 넘어 산.
장성이 굽이치며 구름사이로 올라간다.
그 당시 군역에 백성의 힘이 다했으리.
이끼 낀 거용관에 날이 저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