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출신 종군위안부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가 19세 때인 1942년 3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인도네시아 자바를 침략하기 직전에 찍은 사진(左)과 현재 모습(右).
◆"그때 그 공포 절대 못 잊어"=얀 할머니는 1941년 12월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을 때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인도네시아) 자바에 살고 있었다. 일본군은 4개월 뒤 자바를 점령하고 얀의 가족을 포함한 네덜란드인들을 수용소에 가뒀다. 그리고 2년 뒤 21세의 얀을 비롯한 네덜란드 여성 100여 명을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로 끌고 갔다. 거기서 그들은 일본군의 성 노예가 된다는 말을 듣고 경악했다. 얀은 2001년 호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때 우리가 '제네바 협정 위반'이라고 소리치자 일본군은 히죽히죽 웃었다"고 회상했다.
얀 등은 그때 일본식 이름을 하나씩 받았다. 얀에겐 무슨 꽃이름이 붙여졌으나 그는 그걸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는 과거를 감추고 살던 시절 꽃을 극히 싫어했다. 위안부 생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문을 모르던 두 딸이 생일 선물로 꽃을 준다고 하면 질색을 했다.
얀은 위안소로 들어간 지 얼마 뒤 머리카락을 모두 깎아 버렸다. "대머리처럼 보이면 일본군이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군은 그런 모습에 더 호기심을 느꼈다고 그는 ABC방송에서 밝혔다. 그러면서 "그때의 그 공포를 절대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얀 할머니는 92년 위안부 출신 한국인 할머니 세 명이 일본 정부에 공개 사과를 요구한 걸 TV로 보고 자신도 과거를 밝히고 투쟁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같은 해 12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쟁범죄 청문회에 나가 증언했다.
◆"증언은 엄청난 반향 일으킬 것"=얀 할머니는 호주의 방송에서 "일본은 우리가 죽기를 바라지만 나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할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미 하원에서 증언하면 파장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하원의 한 관계자는 8일 "얀 할머니와 한국인 김군자.이용수 할머니가 증언하면 미국인은 '당시 일본군이 그 정도로 잔인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며 "그들의 증언으로 위안부 결의안의 하원 통과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