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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여성 100명 감금 꽃이름 붙이고 성 노리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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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네덜란드 출신 종군위안부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가 19세 때인 1942년 3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인도네시아 자바를 침략하기 직전에 찍은 사진(左)과 현재 모습(右).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지구환경 소위(위원장 에니 팔리오마베가 의원.민주)가 15일 하원에서 일본군 종군위안부 청문회를 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로 끌려갔던 네덜란드인 할머니가 증인으로 나선다. 호주에 사는 얀 루프 오헤른(84)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공개적으로 분명히 사과해야 한다는 내용의 위안부 결의안이 미국 하원에서 꼭 통과되길 바란다"며 하원 외교위의 증인 출석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때 그 공포 절대 못 잊어"=얀 할머니는 1941년 12월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을 때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인도네시아) 자바에 살고 있었다. 일본군은 4개월 뒤 자바를 점령하고 얀의 가족을 포함한 네덜란드인들을 수용소에 가뒀다. 그리고 2년 뒤 21세의 얀을 비롯한 네덜란드 여성 100여 명을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로 끌고 갔다. 거기서 그들은 일본군의 성 노예가 된다는 말을 듣고 경악했다. 얀은 2001년 호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때 우리가 '제네바 협정 위반'이라고 소리치자 일본군은 히죽히죽 웃었다"고 회상했다.

얀 등은 그때 일본식 이름을 하나씩 받았다. 얀에겐 무슨 꽃이름이 붙여졌으나 그는 그걸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는 과거를 감추고 살던 시절 꽃을 극히 싫어했다. 위안부 생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문을 모르던 두 딸이 생일 선물로 꽃을 준다고 하면 질색을 했다.

얀은 위안소로 들어간 지 얼마 뒤 머리카락을 모두 깎아 버렸다. "대머리처럼 보이면 일본군이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군은 그런 모습에 더 호기심을 느꼈다고 그는 ABC방송에서 밝혔다. 그러면서 "그때의 그 공포를 절대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얀 할머니는 92년 위안부 출신 한국인 할머니 세 명이 일본 정부에 공개 사과를 요구한 걸 TV로 보고 자신도 과거를 밝히고 투쟁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같은 해 12월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쟁범죄 청문회에 나가 증언했다.

◆"증언은 엄청난 반향 일으킬 것"=얀 할머니는 호주의 방송에서 "일본은 우리가 죽기를 바라지만 나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할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미 하원에서 증언하면 파장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하원의 한 관계자는 8일 "얀 할머니와 한국인 김군자.이용수 할머니가 증언하면 미국인은 '당시 일본군이 그 정도로 잔인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며 "그들의 증언으로 위안부 결의안의 하원 통과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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