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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세계 통해 부조리 고발|무한공연 선언『…일그러진 영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극단 까망의『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2년2개월의 대장정에도 지칠 줄 모르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의 폭소속에 한여름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신촌로터리 홍익소극장에서 공연중인『우리들의…』은 지난 89년6월 이후 지금까지 모두 1천6백여회에 걸쳐 약1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지금도「무한공연」을 선언한 상태에서 계속 기록을 경신중이다.
이 작품이 왜 이렇게 식을 줄 모르는 열기를 품고 있는가는 공연장을 찾으면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원작 자체가 베스트셀러작가 이문열씨 솜씨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인기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겠지만 이 작품은 분명 원작소설보다 재미있다. 각색을 잘 했기 때문이다.
원작의 다소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떨쳐버렸다. 대강의 줄거리만 살린 채 구체적 상황과 대사를 철저하게 코믹 처리했다. 그러면서도 폭력적 권력의 형성과 몰락이라는 주제의식은 뚜렷하게 살아 숨쉰다.
이 작품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것은 누구나 아련한 추억으로 떠올리는 개구쟁이 학창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학교 5학년생들이 주인공이다.
시골 국민학교 5학년 교실에도 엄연한 권력질서가 존재한다. 묘하게도 그 권력은 부조리한 공포와 폭력위에서 있다는 본질적 속성으로 우리시대를 풍자하고 있다. 국민학생 주인공들의 귀엽고 우스운 손짓 발짓도 어느 하나 어른들을 꾸짖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천박한 코미디이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서울에서 전학 온 주인공은 부조리한 질서를 바로 잡고자하는 모범학생이다. 그러나 주인공 개인의 힘으로 완강한 기존 지배질서를 바꾸지는 못한다. 주인공은 교실의 독재자인 주먹대장에게 반발하며 급우들의 동참을 요구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따돌림당하는 주인공은 언제나 외톨이며 반장인 주먹대장의 구박으로 항상 화장실 청소를 도맡을 수밖에 없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유리창을 닦더라도 반장녀석은 항상 주인공에게 『불합격』이라며 계속 닦으라고 명령한다. 결국 주인공은 샤프펜슬 한 자루를 반장에게 상납하고 부조리한 질서속에 편입되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만다.
그리고 부조리한 권력질서의 2인자로 부상한다. 갈등은 비록 비극적이지만 해소된 것이다.
그러나 부조리한 질서는 새로운 담임선생이라는 외부적 변화에 의해 바로 잡힌다. 저속한 잡지나 뒤적거리던 옛 선생과 달리 새담임은 주먹대장의 횡포를 응징한다. 순식간 주먹대장에게 아첨 떨던 아이들이 일제히 그의 폭력을 고발하고 규탄한다. 주먹대장은 교실을 떠나고 주인공은 다시 한번 급우들에게 실망하면서 얘기는 끝난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이용우씨는 원작의 마지막에서 어른이 된 주먹대장이 경찰에 붙잡혀가는 장면을 완전히 빼버렸다. 외부의 힘에 의해 비로소 질서가 바로 잡히게 만든 원작자보다 훨씬 지독하게 우중을 꾸짖었다. 공포의 여운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객석의 관객에게는 공포따위를 느낄 틈이 주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웃게할 뿐이다. 온갖 형상의 아첨꾼·바보겁쟁이도 국민학교5학년으로 표현될 때 모두가 웃음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숙제를 못해와 벌벌 떠는 아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싸우는 아이, 떡볶이를 먹고 싶어 군침 흘리는 아이. 모두가 지나가 버린 우리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국민학교5학년 장난꾸러기사내아이와 새침데기 계집아이역을 소화해내는 젊은 여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매일 오후4시30분·7시30분,312-1834). <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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