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보호법 시급하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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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가기관 등의 전산망에 입력된 개인신상 정보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유출,남용되는 사례가 날로 증가하고 있어 사생활 보호와 「개인정보」관리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보도에 따르면 직업과 소득수준·재산·가족상황 등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개인신상자료가 수백만원에서부터 1천만원까지 받고 거래되고 있으며 이를 취급하는 전문 브로커들이 서울에만도 수십명에 달한다고 한다(증앙일보 8월1일자).
이같은 개인정보들은 흔히 사설학원의 안내문 발송이나 상품정보를 알리는 광고회사들의 직접우송광고(Direct Mailing)등에 활용되고 있지만 때로는 강·절도와 제3자에 의한 부실채권 협박등과 같은 범죄에까지 이용되고 있어 그 피해가 매우 심각하다.
실제로 지난 3월 채권 공갈단이 현직 경찰관을 통해 경찰컴퓨터에 입력돼 있는 4만여건의 개인 악성채권 정보를 빼내 상습적인 공갈과 협박으로 10억여원을 챙긴 범죄가 검찰에 적발됐고,지난해에는 서울자동차관리사업소의 전산망을 이용,외제 승용차 차주의 주소를 알아내 강·절도를 벌인 일도 있었다.
우리는 공공기관이 보유한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사설 정보전문 용역업체들이 각족 단체들로부터 수집한 개입 신상자료를 컴퓨터로 전상화시킨 정보가 아무런 법적 규제없이 상품화돼 거래됨으로써 개인의 사생활이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는데 대한 우려를 거듭 표명해 왔다.
정부의 행정전산망은 전국 어디서나 컴퓨터 키만 누르면 4천3백만 국민 개개인의 신상명세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돼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싫든 좋든 정보화시대를 살지않을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주민등록 업무나 부동산관리 등을 전산처리방식으로 바꾸는 행정전산망을 통한 획기적인 행정서비스의 개선을 기꺼이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필요한 공사기관 보유의 개인정보들이 함부로 유출돼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소지를 막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현재로는 법적 구속력이 거의 없는 「총리훈령」 정도가 국가기관의 개인정보 유출을 규제하고 있을 뿐이고 사설전산망에 대해서는 완전무방비 상태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개인정보 보호법을 제정,시행하겠다는 방침이나 이미 중요 개인 신상정보가 유출·유통되고 있는 실정이고 그때까지만 남아 있는 정보들마저 다 유출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최근 신도시 입주자 명단이 전문브로커들에 의해 1천만원씩에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로도 이러한 걱정이 단순한 「우려」가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을 3년 전부터 검토해 왔지만 각 관계부처간의 이해가 엇갈려 현재까지도 법안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와 국회는 중요 민생문제의 하나로 부상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법제정을 서둘러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입법할 수 있도록 노력해 줄 것을 거듭 당부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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