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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 계약제로 생산 비약적 증가|침체 늪서 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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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늘의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들이 추구하는 경제개방정책은 성공할 것인가. 조정전 부총리는 정계에서 물러난 뒤 최근 중국을 방문(6·15∼7·6), 북경대학 강연과 중국 경제학자들과의 간담을 갖고 중국 전역을 두루 여행할 기회를 가졌다.
조순 전부총리는 이번 기행을 통해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중국의 경제문제 뿐만 아니라 중국인, 중국문화·정치 등 포괄적인 사회문제에 대한 견해를 기고해 왔다. 그의 중국 경제·사회 기행문을 8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나는 최근 중국의 북경, 서안, 성도 및 아미·악산·미산, 중경, 양자강의 삼협지역, 의창, 무한, 복주 및 남평·무이산 등의 복건생 일대를 여행한 바 있다. 짧은 기간에 이처럼 넓은 지역을 다녔으니 나의 관찰은 피상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별천지를 처음 본 인상은 대단히 강렬했다. 내가 본 지역은 중국문명의 발상지(서안 및 그 일대),역사적으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지역, 인구밀도가 가장 조밀하며 농공업이 발달하고 인물을 많이 배출한 지역(사천생), 그리고 비교적 문명은 낙후했지만 지금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많은 지역(복건생) 등을 포함한 것으로 도시와 농촌, 공장지대, 해안과 오지를 두루 보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한국경제정책 관심>
북경에 간 목적은 북경대학에서의 강연과 중국의 경제학자들과 간담을 하는데 있었다. 나는 북경에서의 일정이 대단히 빡빡해서 다른 곳을 못 보더라도 북경대학과 청화대학은 보고싶다는 의사표시를 안내자에게 했다. 그러나 2년 전의 천안문사태의 상처가 아직도 완전히 아물지 않은 탓인지 대학 견학은 쉽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청화대학 견학은 자동차로 일순하는 것으로 조정되고 말았다.
19l9년 북경대학은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5·4운동 당시 유명했던 채원배 총장 동상 주변의 울밀한 숲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캠퍼스 였다. 나의 강연장은 「임조헌」이라는 아담한 건물안에 있었는데 이 건물의 입구에는 상당히 무성한 대밭(죽림)이 있어 전통의 아취가 풍기고 있었다. 대는 원래 추운 지방에서는 안되는 식물로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것인데 북경에 이것이 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또 나중에 본 사실이지만 천안문안 고궁의 「노동인민 문화궁」에는 우람한 감(고) 나무가 수십 그루 있어 그 짙은 그늘로부터 요란한 매미소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감나무도 추위에는 약한 과목인데 북경에 이런 식물이 자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강연장에 들어서니 뜻하지 않게 중앙대의 김성훈 교수가 나와있어 대단히 반갑게 만났다. 김교수는 그 곳 교수들과 교분이 두터운 것 같았고 자전거로 학교주변을 왕래하면서 중국식생활 스타일을 구사하는데 조금도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강연은 상대방의 요청에 따라 한국의 경제발전 전략 및 동북아 경제의 장래에 관한 것을 주제로 했다. 교수들과 경제학과 학생들이 경청했고 강연 후 많은 질문을 받았는데 학생들 질문의 내용이 좋아 질이 우수함을 실감했다. 학생들 관심의 초청은 아시아 경제의 장래, 국제경제의 추세 등에 있었다. 교수들 중에는 한국의 경제에 대해 상당수준의 인식을 가진 사람이 있었고 앞으로의 정책방향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명했다.
북경에 있는 동안 변재 중국경제의 방향을 잡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있는 저명한 경제학자들과 몇 차례에 걸쳐 간담회를 가졌다. 첫째, 마홍·장반교수 및 정영주여사 둘째, 국무원경제발전중심의 설모교·오경련교수 셋째, 국제문화출판협회의 이어령 교수, 그리고 국제문화교류 중심의 모국화·조대붕씨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매우 진지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 풍길 수 있는 거친 면모라고는 전혀 없는 친절하고 겸손한 인물들이었다. 대만의 중국학술원에도 이런 풍모를 지닌 학자들이 더러 있는데 이런면이 곧 중국문학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들과의 간담을 통해 얻은 지식과 그 후의 여행과정에서 관찰한 것을 종합하여 중국경제의 현황·문제점 및 전망을 기술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중국 경제는 49년 중공혁명성취로부터 78년의 개방 정책이 채택될 때까지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다. 53년부터 57년에 이르는 제1차 5개년 계획기간 중에는 경제가 비교적 순조로웠으나 58∼60년의 「대약진」및 「인민공사」건설과정에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음으로써 경제는 위기에 직면했다. 61년부터 67년에 이르는 조정기간 중에 경제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나 68∼77년의 「문화대혁명」기간 중에 그것은 다시 마비상태에 빠졌고 정치와 사회도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공업 성장 13·8%>
그러나 모택동 사망, 사인방 실각에 이어 78년부터 추진된 개방정책에 힘입어 경제는 수습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78년 이후 경제는 상당한 인플레에 시달리기도 했고 89년에는 천안문사태가 발생하여 중공체제하 민주화운동의 한계가 세계에 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플레도 상당히 진정되고 정치·사회도 안정되어 있다.
지난 12년 동안 중국 실질 GNP의 연평균 성장률은 9·8%, 공업의 성장률은 13·8%, 농업의 그것은 6·5%에 달했다. 이러한 성과는 소련경제의 침체상과는 매우 대조적이며 비슷한 여건 하에 있는 인도에 비해서도 월등한 실적이라고 하겠다.
개방정책의 성공은 농업의 성공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그 동안 인민공사를 통해 강제로 집단화됐던 농민은 78년 이후로는 토지(모두 국유로 되어있다)의 사용을 국가와 계약하여 일정률의 생산물을 국가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유처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농민에게 큰 생산유인으로 작용함으로써 지난 몇 년 동안 곡물생산은 2·5억t에서 76%가 는 4· 4억t으로 증가했다.
마홍 교수에 의하면 흔히 외국사람들은 중국농업의 성공을 토지사유제의 도입에 기인하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하나 그것은 오해라고 한다. 그는 중국에서 토지의 사유를 인정하면 그것은 결국 소수의 사람들에 의한 토지의 겸병을 가져오게 되며 빈부의 격차가 심화될 것이기 때문에 토지사유제는 있을 수 없다는 것. 따라서 토지의 국유제는 결국 사회보험의 성격을 띠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토지의 국유제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 토지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강구 중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방정책이 확실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공업부문도 농업부문에 못지 않은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 78년 이후 현재까지 중국의 공업 중 가장 발전이 빠른 부문은 「향진 기업」이다. 「향」과 「진」은 우리 나라의 읍 내지 면 등에 해당하는 것으로 향진기업은 말하자면 농촌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향진기업은 개인소유의 것도 없지 않으나 대다수는 몇 가구의 공동소유, 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집단소유」로 되어있다. 이러한 향진기업은 원래 지방의 수공업이나 농산물가공업을 주업으로 했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석탄·시멘트·농기구·섬유·의류·피혁·지류·각종 서비스업 등으로 매우 다양해졌다. 향진기업의 생산액은 78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연평균 29%의 성장률을 보여 87년 현재 전국에 l천8백만 개의 기업체가 있는데, 고용인원은 8천8백만 명이다.
중국 공업정책의 기본방침 중 하나는 이러한 향진기업을 육성함으로써 국민소득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농민이 농촌에 살면서 공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여 노동력의 도시유입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78년 이후의 개방·개혁정책은 시장기능과 계획을 적절히 조화시킴으로써 능률과 평등을 동시에 확보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현재의 추세를 보면 향진기업은 앞으로도 상당한 발전을 이룩할 것이 예상된다.

<시장경제 장점 가미>
공업부문에서 중국정부가 부닥치는 큰 문제는 현재 국가소유로 되어 있는 대단위 기업체에서 경영의 합리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어떻게 마련하느냐의 문제다. 이것은 아주 어려운 문제로 중국정부도 아직 이에 대해서는 확실한 방침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해 중국정부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점진적으로 실사구제의 과정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앞으로 공업의 발전에 성공한다면 중국의 경제구조는 어떻게 될까. 속단하기는 어려우나 지금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결국 대만의 구조와 비슷한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국가의 기간산업은 국유로 남고 중소기업이 비교적 골고루 농촌 전역에 퍼져서 농촌지역에서의 농외 소득원이 확대되는 구조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국가경영을 선호하는 중국인의 심성에 가장 잘 맞는 구조이기도 하다. 대만의 경제구조는 자본주의에다가 삼민주의의 이념을 가미하고 거기에다가 반 독점·반 인플레의 기본방침을 곁들임으로써 만들어진 구조다. 중국의 개방정책은 앞으로도 사회주의의 이념을 지향하면서도 자본주의의 장점을 가미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사회주의는 앞으로 날이 갈수록 삼민주의에 접근하지 않을까 생각되며 그렇게 되면 대륙의 경제구조는 다른 어떤 것보다 대만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개연성의 시사일 뿐 예언은 아니다. 중국은 지금 전통적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닌 제3의 체제를 만들고자 세계사상 처음 있는 실험을 하고 있고 그 앞날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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