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달러 위조 포기 약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2005년 9월에 시작된 미국의 대북 금융 제재가 해결 국면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달 30~31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북.미 협상에서 큰 걸림돌이 제거된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북한의 돈세탁과 위조 달러와 관련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8일부터 재개되는 6자회담의 전망도 밝은 편이다.

◆미국, 이례적으로 높은 평가="이번 회의는 매우 생산적이었다. 이젠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에 모종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앞으로 나아갈 상황에 도달했다고 본다." 베이징 금융회의 직후 미국 협상팀장인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금융범죄담당 부차관보는 이렇게 말했다. 국무부의 톰 케이시 부대변인도 "유익한 정보가 교환된 아주 좋은 회의였다"며 "이런 협의가 앞으로도 계속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AP통신 등 미국 언론들은 이런 분위기를 근거로 BDA에 동결된 북한 자금 2400만 달러 중 합법자금 1300만 달러는 해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측도 1300만 달러의 해제 시점이 가까워진 것으로 보고, 이 돈을 마카오의 다른 은행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1일 북한의 은행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는 1일 "다음 6자회담에서 진전을 이룰 토대가 마련됐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한국 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6자회담에서 북한이 핵 폐기와 관련된 기술적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미 대표가 잇따라 낙관적 전망을 내놓은 것은 BDA 문제가 더 이상 심각한 장애물이 아니라는 해석을 낳게 한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 초기 대북특사를 지낸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북한 자금 동결 해제는) 일정한 시점이 되면 풀릴 문제"라며 최종 합의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임을 시사했다.

◆글레이저-오광철 어떤 대화 했나=글레이저는 이틀간 회의를 마친 뒤 "동결된 50개 북한 계좌에 대해 일일이 검토한 결과 유용한 정보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북한과 머리를 맞대고 동결 계좌들의 합법.불법성을 규명했음을 내비친 것이다. 여기서 북한 대표인 오광철 국가재정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일부 합법 계좌를 들이대며 풀어달라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입장에선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심이 맞았다"고 주장할 근거가 되는 한편 일부 합법 계좌는 풀어줄 명분도 될 수 있는 것이다. 평양의 영국계 은행인 대동신용은행의 대외협상대표 콜린 매카스킬은 지난달 18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BDA에 동결된 2400만 달러 중 600만 달러는 명백히 우리 은행의 합법적인 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글레이저 부차관보는 "이번 회의에 위폐 전문가 2명을 대동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 측에 위폐 제조 증거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근거로 그는 북한 측에 ▶잘못을 시인하고 ▶위폐 동판을 파기하고 ▶위폐용 잉크와 종이 수입을 완전히 중단하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