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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길어 밟힌 외화 밀 반출|드러난 외화 도피 사범 중 최고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24일 검찰에 적발된 거액 외화유출 사건은 그 액수가 2천만달러(한화 1백43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인데다 외화반출 목적 또한 부도덕하기 짝이 없어 충격을 주고 있다.
외화를 빼돌린 사람들은 호화로운 외국생활을 위한 부유층, 사치성 해외여행을 부추기기 위한 여행사 대표를 비롯해 전자부품 밀수대금을 지불하기 위한 기업인과 이들에게 기생해 수수료를 챙긴 불법송금업자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구속된 송금업자들은 수사기관에서 대부분의 송금 의뢰자가 수억원의 현찰을 상자에 담아 내놓으면서도 익명을 요구했다고 밝혀 국제수지적자에 시달리는 국가경제를 외면한 이들의 몰염치한 행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외화 도피사범>
삼미그룹 고 김두식 회장의 3남인 김현기씨는 미 영주권자인 누나 김미생씨가 상속받은 1백억여원의 국내재산을 미국으로 빼돌리다 검찰에 구속됐다.
김씨는 지난해 8월부터 누나 김씨 소유의 주식매각 대금 중 12억2천만원을 미 달러화로 환전, 재미교포들을 통해 밀반출 해오다 수배중인 황규백씨(60·미 체류 중)를 통해 불법 송금업체를 소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후 김씨는 4개 송금업체를 통해 3월부터5월까지 43억5천만원을 추가로 빼돌려 지금까지 수사기관에 적발된 외화도피사범 중 최고액을 기록했다.
또 유로스타 여행사를 경영하고 있는 김종서씨(39·수배)는 서울항공 등 17개 여행사들의 해외여행 경비 한도(1인당 5천달러)를 초과한 여행자 경비송금을 도맡아 월드기획을 통해 1억2천만원을 일본으로 송금, 사치성 해외여행을 부추겨 온 것으로 밝혀졌다.
구속된 대진무역 대표 황동권씨는 자신이 일본을 왕래하며 밀반입 한 수입금지 컴퓨터주변기기부품 대금 약1억원(15만달러)을 송금회사인 오비에스사를 통해 지불했으며 호주로 이민간 박현숙씨(여·수배)는 출국직전인 지난해 12월 국내재산을 처분한 63만달러를 오비에스사 등 3개 업체를 통해 분산 송금하기도 해 외화 빼돌리기의 전형적인 수법을 보여주었다.

<송금회사>
검찰수사결과 이들 송금회사들은 일본에 불법 체류하고 있는 한국인 노무자나 호스티스들의 국내송금을 대행하면서 자본을 모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송금회사들은 사이비 해외 송출업체를 통해 해외로 간 근로자들이 불법체류 사실이 적발될 것을 우려,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자 1%의 수수료를 떼고 일본에서 엔화를 받아 국내 본사가 원화를 지급하는 대상방식의 송금을 대행해오다 본사의 원화를 조달하면서 고율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해외로의 외화도피에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송금대행 서비스업체로 사업자등록까지 마친 오비에스·유니온아카데미 등 2개사를 포함, 이번에 적발된 5개 업체가 지금까지 해외로 빼돌린 액수는 1천9백70만달러에 달한다고 검찰은 밝히고 있으나 이들이 송금의뢰자의 신원보안을 위해 팩시밀리 전문 및 거래 장부를 철저히 파기시켜온 점등에 비추어 실제 거래 액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이들은 10∼20명의 본·지사 직원을 두고 송금업체를 운영해오면서 철저한 의뢰자 신원보안과 신용거래 원칙을 지켜온 것으로 밝혀져 국제적인 범죄단체의 음성거래가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보여 유사업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관리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권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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