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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사범 쉬게 해주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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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위기에 처한 한국 바둑이 국가대항전인 농심배에서 다시 한번 심판을 받게 됐다. 사진은 박영훈 9단(左)이 중국 최고의 신예 천야오예 5단을 격파하며 농심배 3연승을 이룩하던 모습.[한국기원 제공]

8회 농심신라면배 최종 라운드가 다가왔다. 6~9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우승 팀이 결정된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선수들의 숫자와 대진 순서만을 따질 때 한국의 우승 확률은 35%쯤 된다. 우승을 놓칠 가능성이 60% 이상이라는 얘기다. 전 같으면 이런 확률 따위는 따져 보지도 않았다. 한국 팀은 으레 이겼고 매번 새로운 기록을 작성해 나갔다. 농심배 6연패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한데 상황은 크게 변했다. 무엇보다 단체전 우승의 보증수표였던 이창호 9단의 컨디션이 나쁘다는 게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요소다. 철벽 수문장 이창호가 국내외에서 잇따라 지고 있어 일단 그에게 모든 짐을 안겨주고도 마음이 편했던 과거와 달리 불안과 스릴.기대가 교차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한국은 현재 박영훈 9단과 이창호 9단 두 사람이 남아 있다. 중국은 구리(古力) 9단과 쿵제(孔杰) 7단 두 사람이, 일본은 주장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 한 사람만 살아남아 있다. 2 대 2 대 1.

그러나 6일의 첫판은 한국(박영훈)과 일본(요다)의 대결이다. 이 대결에서 승리해야 비로소 한국과 중국은 5 대 5 싸움이 된다.

박영훈 9단은 '전적표'에서 보듯 5연승을 질주하던 중국의 펑취안(彭) 7단을 꺾은 뒤 일본의 명인 다카오 신지(高尾紳路) 9단과 중국 최고의 신예 천야오예(陳耀燁) 5단마저 격파해 3연승을 달리고 있다. 조훈현 9단, 최철한 9단, 원성진 7단 등 3명이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탈락한 한국은 박영훈의 수훈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기세로 본다면 박영훈이 한물간(?) 요다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영훈은 " 3연승이 목표다. 이창호 사범님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순둥이'로 알려졌지만 지난해 하도 고생했기 때문인지 지금까지의 3승에 다시 3승을 보태 6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신4천왕'의 한 명인 박영훈은 2005년도에 최고의 해를 보냈으나 지난해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급전직하했다가 농심배에서 간신히 제 몫을 해냈다. 따라서 이번 농심배는 박영훈 개인에게도 2007년의 흥망이 걸린 매우 중요한 결전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요다는 지난해 마지막 대결에서 이창호 9단을 꺾고 일본에 첫 우승컵을 선사했던 인물. 이상하게 국제전에 강하고 특히 한국의 젊은 기사들을 잘 요리하는 재능을 지니고 있다. 박영훈이 만약 요다에게 진다면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여 문자 그대로 샌드위치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요다보다 무서운 상대는 물론 중국의 랭킹 1, 3위에 올라 있는 구리와 쿵제다. 구리는 현재 한국의 프로들이 중국 최강으로 지목하는 기사지만 얼마 전 중국 국내 기전 결승에서 쿵제에게 1 대 2로 졌다. 쿵제 역시 쉽지 않은 상대임을 말해준다.

이창호 9단은 2005년도 대회에서 막판 5연승을 거두며 한국의 6연패 달성에 기여했다. 이창호가 당장 예전의 컨디션을 회복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래도 항시 그는 희망을 품게 한다. 중국 강세에 밀린 한국 바둑이 박영훈의 선전과 이창호의 마무리로 대반격을 성공시킬 수 있기를 팬들은 학수고대하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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