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총리는 "대학 자율권 확대는 필요하지만 대학의 공공성부터 높여야 한다는 게 정계와 정부의 의견"이라며 "(총장들이) 더 노력해야 하는데 섭섭하다"고 말했다.
반응은 냉랭했다. 서울 A대학 총장은 "학자 시절 누구보다 자율을 강조하던 사람이 지금은 저쪽(청와대) 입장에서만 얘기하는 것 같다"며 "교육부총리가 바뀔 때마다 자율권 확대를 약속하지만 실제론 돈줄을 쥐고 입시.행정 등 모든 문제에 시시콜콜 간섭한다"고 말했다.
B대학 총장은 "교육부가 2000년에 교육인적자원부로 확대 개편되면서 인력.예산 등 몸집만 커졌지 한 일이 뭐냐"며 "교육부총리와 공무원들이 코드나 맞추다가 문제가 생기면 청와대 탓만 하니 답답하다"고 비난했다.
세계 경제규모 10위권, 고교생의 82%가 대학에 진학해 국민 16명 중 1명이 대학생인 대한민국. 외형적인 고등교육 지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한국의 교육은 벼랑에 서 있다.
입시제도는 툭하면 바뀌고, 사교육비는 매년 불어나고, 조기 유학생이 2005년 이후 연간 2만 명을 넘어섰다. 교육정책의 혼선이 국민적 고통이 된 것이다.
대학에도 문제는 있다. 경쟁력 향상 노력보다 정부 눈치만 보며 안주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방대의 반란'으로 불리는 포항 한동대의 성공사례는 눈여겨 볼 만하다. 1996년 개교한 이 대학은 전체 강의의 30%를 영어로만 하는 등 미국의 토론식 교육을 하고 있다. 특히 10년간 60여 개국의 외국인 학생을 유치해 '캠퍼스 국제화'에 성공했다는 평이다.
김영길 총장은 "학생들 실력이 단단하다 보니 삼성 등 대기업들도 서로 끌어가려 한다"며 "외국인 학생 유치 등 자율권이 대폭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여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연간 3000억원의 두뇌한국(BK21) 사업비 등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돈의 73%(3조2957억원)를 교육부가 주무르며 대학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 총장은 "'내신을 확대하라''논술 가이드라인을 지켜라''적립금을 쌓아놓지 말라"며 간섭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며 "교육부의 '돈줄'이 대학 경쟁력을 갉아먹는 '독'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율권 보장해라"=본지는 대학의 자율권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전국 4년제대 총장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설문에 응한 51명 중 39명이 "교육부가 자율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입시정책▶재정▶행정(학사운영.교육과정) 분야의 간섭이 심하다고 했다.
서울대 이장무 총장은 "10여년 전부터 정부가 자율화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대학 현장의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정창영 총장은 "정부는 대학 교육의 큰 틀만 디자인하고 학생 선발 등 세부적인 운영은 대학에 과감히 넘기는 방향으로 정책의 큰 줄기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장 51명은 모두 자율권이 확대돼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은 "세계 일류 대학을 키우려면 대입.재정.학사운영 등을 모두 대학에 맡겨 경쟁력 있는 블루오션을 찾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양영유(팀장).강홍준.김은하.박수련 기자, 신창운 여론조사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