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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국내 첫 게임高 설립한 정광호·이명숙씨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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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계 컴퓨터 업계를 쥐락펴락하는 빌 게이츠처럼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영재들을 길러내겠습니다."

최근 전북 완주군 운주면에 한국게임고등학교를 설립한 정광호(丁光浩.47.컴퓨터공학과.(左)) 한세대 교수와 이명숙(李明淑.45)씨 부부.

현재 게임학과를 개설한 대학은 전국에 40여개나 있지만 고교 과정은 이 학교가 처음이다. 특성화 학교인 게임고를 졸업하면 일반 고등학교를 다닌 것과 다름없는 졸업장을 받는다. 이 학교는 게임 분야에 뛰어난 자질을 지닌 학생을 선발, 디자인.프로그래밍.그래픽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해 게임 기획자나 설계.제작자를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입생은 내년 2월에 50명을 선발하며, 이후엔 매년 1백명씩 뽑을 계획이다. 내년 3월 시작되는 수업은 한반 수강 인원을 5명 안팎으로 편성해 개인지도식으로 진행된다.

"게임에만 몰두하면 한쪽으로 편향돼 인간성이 메마를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매일 아침 30분씩 명상하고, 오후엔 1시간의 독서시간을 마련해 인성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학교 안팎에서 열리는 자원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방침입니다."

또 게임 영재들이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영어를 자유자재로 말하고 쓸 수 있도록 지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원어민 교사를 초빙해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생활하도록 할 계획이다.

丁교수 부부가 "무모하다"는 주변의 손가락질을 무릅쓰고 학교를 세운 것은 머리 좋고 손재주가 뛰어난 한국인에게 게임이야말로 가장 적성에 맞는 분야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게임은 프로그램을 짜거나 그래픽을 그리는 과정 등 어느 한 단계도 자동화할 수 없어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야 하는 노동집약형 산업입니다. 또 게임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고부가가치산업이고요. 그런데도 2백조원대에 달하는 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불과할 정도로 보잘것없습니다."

이와 함께 현재 게임 개발자는 20대 초반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국내에는 대학에만 게임학과가 있어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경우 능력을 발휘할 시기를 잃어버리고 마는 데 대한 안타까움도 학교 설립에 나선 동기로 작용했다.

본래 컴퓨터를 전공한 丁교수는 1996년 중부대 학생처장 재직시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관심을 가지면서 게임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98년 국내 대학에선 처음으로 '컴퓨터 게임'과목을 개설하고 교재도 만들었다. 2001년 한국게임학회를 창립한 뒤 이를 이끌어 오면서 국내 게임산업의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정책을 개발하는 조타수 역할을 해왔다. 교수.게임업체 CEO 등으로 구성된 이 모임은 현재 회원이 5백여명이나 된다.

게임고 이사장을 맡은 부인 李씨 역시 컴퓨터를 전공해 서울에서 학원을 15년째 운영하고 있는 베테랑 교육자다. 李씨는 "재능있는 아이들에게 5~6년쯤 컴퓨터를 가르치면 더 가르칠 게 없는 현실에 아쉬움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게임학교를 만들자"는 남편의 제안에 적극 동조해 인.허가 신청 등 궂은 일을 직접 하면서 학교 설립에 앞장섰다. 李씨는 또 丁교수가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고 푸념할 때마다 "청소년들의 창의성을 맘대로 펼칠 수 있는 영재사관학교를 만드는 것보다 보람있고 값진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설득했다. 이제 개교를 앞둔 이들 부부는 이렇게 포부를 밝혔다.

"게임산업은 이미 영화시장을 앞지르고 곧 반도체 시장을 능가할 정도로 고속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이처럼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게임산업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겠습니다. 재능있는 학생들의 열정과 창의력을 끌어내 한곳에 몰아주면 멀지 않은 장래에 세계 게임업계를 사로잡을 명작이 나올 것으로 믿습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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