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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특파원 이라크 리포트 2信] 나시리야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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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9일 올 들어 세번째 방문한 나시리야는 활기와 긴장이 교차했다. 청소하거나 보도 블록을 정비하는 주민들 때문에 거리는 활기차 보였다. 그러나 주요 도로는 검문을 하는 미군의 장갑차에 가로막혀 있었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이탈리아군의 검은색 장갑차와 지프가 수분 간격으로 순찰을 돌았다. 이 도시의 남부를 담당하는 루마니아군의 개구리 무늬 장갑차량들도 거리 곳곳에 배치돼 있다.

나시리야는 원래 후세인에게 저항하던 이른바 '남부 시아파 지역'의 도시로 저항 공격과 테러에서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분류돼 왔다.

그래서 이탈리아군이 치안 유지를 맡고 미군은 외곽으로 나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 12일 이곳에 주둔한 이탈리아군 헌병 파견 분대 청사(일부 외신에서는 경찰서로 보도됨)를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27명이 사망하면서 분위기는 돌변했다.

미군이 도시지역으로 돌아온 것은 물론 현지에 주둔한 이탈리아.한국.루마니아의 군대가 모두 '비상경계'에 들어갔다.

거리에서 만난 주민들도 표정이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이라크 남성 사회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한 이발소를 찾았다. 이발소 주인(이라크에서 이발관 주인은 마을의 오피니언 리더다)인 유니스 카파치(29)는 "연합군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며 "이번 테러를 저지른 자들은 이라크인이 아니다"고 목청을 높였다. 손님인 무하마드 스가이르(27)는 "아무튼 나시리야 주민은 절대 아니다"고 거들었다. 이들은 속이 타는지 라마단(단식월) 기간 중 낮시간에 금하는 담배까지 빼물었다. "불안해서 일도 손에 안 잡힌다"며 카파치는 속상해 했다.

서희부대의 주선으로 방문한 이탈리아군 사령부는 분주한 가운데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군인은 물론 사복 차림의 조사단.기자들도 묵묵히 일만 하고 있었다. 사령부 건물 입구에는 여전히 조기가 걸려 있다.

이탈리아군의 마르코 멜로 공보장교는 "충격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어진 임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테러 배후에 대해 멜로 대위는 "이탈리아 및 연합군 수사기관이 배후세력을 철저히 추적 중"이라며 "곧 연합군 당국이 이라크 전역 테러조직들의 정체를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서희부대가 설치한 '서희기술학교'에는 테러사건 이후 등교하는 현지인 학생이 절반으로 줄었다. 기술학교에서 숙식을 하며 영어강좌와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 구호단체 '글로벌 호프'의 이종성(69)대표는 "이라크에서의 철수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군은 상호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었다. 미군은 한국어와 이탈리아어로 비상상황을 신속히 알려준다. 상황이 발생하면 이탈리아군은 기동타격부대를 한국군에 지원하고, 한국은 고가 초소를 설치해 주둔지 경계를 지원하는 등 서로 돕는다고 한다.

한국군 공병지원단인 서희부대의 2진으로 이곳에 온 천영택 대령은 "한달간 준비작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려던 차에 테러가 발생해 재건활동이 중단됐다"고 아쉬워 했다. 하지만 "재건 참여 의욕이 있더라도 부대원의 안전이 최우선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나시리야=서정민 특파원
사진=이라크 중부 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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