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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씨, 최근까지 유학생 포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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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송두율씨는 1973년 노동당 가입 후 최근까지 북한 지시를 받고 유학생 포섭과 주체사상 전파 임무를 수행해 왔다고 검찰이 최종 결론을 내렸다.

91년 5월 김일성을 면담한 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서열 23위)에 선임된 것도 그런 활동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19일 宋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그의 친북 행적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내용을 67쪽 분량의 공소장에 담아 공개했다.

이에 宋씨 측 변호인단은 "검찰이 구시대적인 국가보안법의 형식 논리만으로 구속 기소했다"며 "포승과 수갑 사용 등 수사 과정의 불법행위와 피의사실 공표 부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공소장에 따르면 宋씨는 73년 자진 입북해 북한 대외연락부 부부장에게서 유학생 포섭 지령과 함께 공작금 2천달러를 받았다. 79년에는 가족과 함께 북한에 들어가 허담 외교부장을 면담한 사실도 밝혀졌다. 당시 宋씨는 74년 자신이 주도해 설립한 반한(反韓)단체 '민주사회건설협의회'의 활동내용을 북측에 보고했으며 "독일에 있는 유학생을 포섭하라"는 지령과 함께 공작금 1천달러를 받았다는 것이다.

82년에는 북한 지령에 따라 독일에 한국학술연구원을 설립했다. 그는 북한에서 제공한 주체사상 관련 책자를 이곳에 비치해 주체사상을 선전하고, 입북 권유를 받은 유학생을 교육했다는 것이다. 그는 88년 북한을 방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전금철을 만나 "독일에 돌아가면 조국통일을 위해 힘쓰고, 유능하고 똑똑한 친구가 있으면 우리에게 연결시켜 달라"는 지령을 받고 공작금 1천달러와 인삼주 등의 선물을 받았다. 그는 이무렵 국내 월간지에 '북한 바로 알기'라는 명목으로 주체사상과 북한체제를 옹호하는 글을 기고했으며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을 전파했다.

또 91년 5년 김일성 면담 2개월 뒤 다시 방북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인 윤기복에게 한국학술연구원의 자금 지원을 요청해 92~94년 매년 2만~3만달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宋씨는 95년 이후 여섯차례 남북 학자 통일학술회의를 열면서 김용순 대남 담당비서 등과 의논했고, 이를 통해 주체사상을 전파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宋씨가 91년 이후 국내 언론과 출판물을 통해 북한체제를 선전한 것도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서의 활동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또 宋씨가 96년 다섯차례의 충성 맹세문을 북한에 보냈으며, 97년에도 김일성과 김정일 생일 등에 세차례 맹세문을 보낸 것을 밝혀냈다. 재독 북한이익대표부 공작 책임자 김경필이 북한에 宋씨에 대한 동향 보고를 한 문건에서 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宋씨는 96년 부친 사망 때 북에서 1천5백마르크의 조의금을 받았고, 97년 김일성 사망 3주기 때는 헌화비 명목으로 베를린 주재 북한이익대표부를 통해 북에 5백마르크를 송금했다.

◇배후 연계 수사=검찰이 宋씨를 구속 기소함에 따라 앞으로는 입국 경위 및 국내 연계 세력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검찰은 이미 宋씨가 오길남씨 외의 다른 독일 유학생에게도 입북을 권유했다는 정황을 포착한 상태다.

검찰은 그동안 참고인 9명을 직접 조사하고 5명은 방문 조사, 14명은 전화 조사를 했다. 전화 조사 대상자의 상당수는 宋씨가 포섭한 독일 유학생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을 상대로 宋씨 초청 경위를 조사하기로 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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