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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공소장 요약]

중앙일보

입력

<공 소 사 실>

피고인은

1. 반 국가 단체에 가입하여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면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 주체철학 및 김일성 혁명 역사 등 사상 교양학습을 받고,

- 북한의 대남공작기관인 연락부 소속 성명 미상 부부장으로부터 조선노동당에 입당하라는 제의를 받고, 입당원서 및 신상명세서 등을 작성하여 동인에게 제출한 후 선서 및 충성 맹세문을 낭독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 반국가단체인 북한 공산집단의 지도조직인 조선노동당(이하 노동당으로 약칭)에 가입하고,

- 위 부부장으로부터 "독일에 가면 유학생이나 반정부 활동을 하는 애국인사들을 규합해서 조국 통일 사업을 공개적으로 추진하라"는 지령과 함께 공작금 명목으로 미화 약 2,000달러를 교부받아 독일로 돌아옴

○ 1974. 3. 1. 재독 교포 및 유학생 등 160여명과 함께 친북단체인'민주사회건설협의회(민건협)'를 결성하여 1대, 2대, 5대, 6대 의장에 취임하여 그 임무를 수행하는 등 친북활동을 적극 전개함

○ 1977. 8. 11.부터 8. 14.까지 일본 동경 소재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사무실에서 개최된 소위 '해외민주운동단체 대표자회의'에 공소외 윤이상, 같은 김길순 등과 함께 참석하여 국제적인 반한 연대투쟁을 목적으로 '민주민족통일 해외한국인연합(한민련)'을 결성함

○ 1979. 10. 동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 소속 최 명미상 지도원의 안내로 다시 북한에 들어가 평양 소재 명칭 미상 초대소에서 약 1주일간 체류하면서,

- 북한 외교부장 허담을 면담하고,

- 노동당의 지도 및 통제를 받는 사회과학원 부소장 성명미상 등으로부터 주체사상을 학습받고,

- 성명 불상의 지도원에게 "그 동안 민건협 초대 및 2대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조직을 성장시키려고 노력하였으나, 3대 윤이상, 4대 이영빈 의장 시기에 고압적인 자세로 노동자들이 이탈하였고, 이영빈 의장의 경우 금전적인 부담을 끼쳐 조직이 사실상 와해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회원들의 추대로 다시 5대.6대 의장을 맡게 되었다"라는 내용의 민건협 운영상황을 보고하고,

- 대외연락부 부부장 성명미상으로부터 "독일로 돌아가면 민건협을 잘 이끌고, 유학생 중 유능한 인재들을 잘 이끌어 달라"라는 지령과 함께 공작금 명목으로 미화 1,000달러 및 인삼주 등의 선물을 교부받음

○또 1985. 8. 독일 북부도시 킬 해안가에서 공소외 오길남에게 "현재 남쪽 상황이 답답하므로 지금 우리가 기댈 언덕은 북한 밖에 없다. 경제학자로서 조국의 발전을 위하여 북한에 가서 활동해 보면 어떻겠는가"라고 입북을 권유하고, 같은 해 11. 베를린역 인근 레스토랑에서 위 오길남에게 "북한도 변해야 한다. 북한에 가서 경제학자로 활약해 주기 바란다"라고 재차 입북을 권유하여 동인으로 하여금 1985. 12. 13. 처와 자녀 2명을 대동하여 입북하게 함

○ 1987. 9. 26. 독일 서베를린 소재 사무실에서 위 윤이상, 김길순 등과 함께 남한에서의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을 목표로 하는 친북단체 '재유럽 민주한인협의회(유럽민협의회)'를 결성하여 기관지 '민주조국'의 편집고문으로 활동함

○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자, 서울올림픽 개최 반대를 주장하기 위하여 독일인 3인과 공저(共著)로 '평화로운 경기에 부적합한 나라, 남한(Kein Land fur friedliche Spiele, Sudkorea)'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배포하고, 독일 일원을 돌아다니며 '88 올림픽 개최 반대 강연'을 하는 등 친북 활동을 전개함

○ 1988. 9. 북한대사관 소속 진 명미상 지도원의 안내로 항공편으로 북한에 들어가 평양 근교 서재골 초대소에서 2주일 가량 체류하면서,

- 주체사상 등 사상 교양학습을 받고,

-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약칭 조평통) 부위원장 전금철로부터 "독일에 돌아가면 조국통일을 위하여 힘쓰고, 유능하고 똑똑한 친구가 있으면 우리에게 연결시켜 달라"는 지령과 함께 공작금 명목으로 미화 1,000달러 및 인삼주 등의 선물을 교부받음

○ 국내의 친북좌익세력들에게 '북한 바로알기'라는 명목으로 주체사상과 북한체제를 옹호하는 글을 기고하여 대남통일전선전술 역량을 강화하기로 마음먹고

1988. 12. 국내 월간지<사회와 사상>에 기고한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글에서 '지금까지 북한연구는 반공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편견 아래 북한 실상을 왜곡시켜 왔다. … 북한실상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북한 내부의 시각에 따라 북한을 분석해야 하며, 북한 내부 시각을 알기 위해서는 주체사상 연구가 필수적이다'라고 주장하는 등 소위 '내재적 접근법'을 통하여 북한을 평가 및 이해할 것을 제시함

-1995. 5. 10. '도서출판 당대'를 통하여 '역사는 끝났는가'라는 책자를 발간하면서

○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식 사회주의'는 '동독색깔의 사회주의'와 비교해서 일찍부터 자주성을 강조했고, 중국의 '특색있는 사회주의'에 비하여 사상적 요새점령 문제를 물질적 요새점령 문제 이상으로 사회주의에 있어서 중요한 고리로 여기고 있다.

○전후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한 강대국에 대해서 자주성을 강조하고 자기 길을 걷겠다는 원칙에 따라 행동해 온 김주석을 강대국들은 싫어했지만, 민족의 자주와 존엄을 위해 독립 이후에도 계속 투쟁해 온 제3세계와 비동맹세력은 김주석을 그들 세계의 지도자로서 바라보았다.

우선 주체사상의 내재적 검토는 남북통일을 위한 새로운 발상의 전환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김정일 체제는 현대 간부의 부정부패와 앞으로 심해질 수 있는 군부에 의한 지방분권화 문제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등소평 이후의 체제보다는 훨씬 안정된 체제라고 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기술하여, 비록 동독 등 동구 사회주의국가가 몰락하였지만 사회주의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고, 자주성을 상실하였던 동독과는 달리 북한은 주체사상에 의하여 자주성을 철저히 유지하고 있어 동독과는 다르며, 반동에 지나지 않는 남한의 지성들과는 달리 북한의 지성들은 사회주의를 고수하려는 의지가 있으므로 독일식의 흡수통일은 유혈사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는 내재적 접근법에 따라 주체사상을 먼저 이해할 것을 권유하면서 주체사상을 옹호하고 김일성과 김정일을 미화함과 동시에 남한사회를 미국에 종속되었다고 비방함

- 2000. 11. 9.자 한 잡지에 '속도조절론 유감'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하면서

○1953년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치하는 문제는 국제법적으로는 북.미간의 문제이다. 그래서, 주한미군 문제는 북.미간의 협상 의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동시에 한국군 지휘권 문제와 결부되었기에 남한과 미국간의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등의 내용을 기술하여, 한반도의 평화유지를 위한 주한미군의 실체적 역할을 전면 부인하고, 남한의 통일정책을 의도적으로 폄하함

○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북한으로부터 매년 공작금 명목으로 미화 2~3만달러를 수수하여, 1987. 10. 폐쇄되었던 '한국학술연구원'을 재개설하여 그 운영자금으로 사용하는 한편 피고인의 개인적 활동자금에 충당함

○ 1994. 7. 11. 베를린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소속 공작원인 송룡욱으로부터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관련하여 "주석님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어 하는 지원자가 많이 있지만 다른 사람은 못 가도 송선생은 장의위원에 선임되었기 때문에 꼭 가야한다"는 지령을 전달받고, 같은 달 13.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항공편으로 북한에 들어가, '국가장의위원회'서열 23위에 등재된 '김철수'라는 가명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자격으로,

- 같은 달 14.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평양 소재 금수산 의사당에서 김정일을 만나 조문하고,

- 같은 달 19. 위 금수산 의사당에서 개최된 김일성 장례식 행사에 참석하고,

- 같은 달 20. 평양 소재 김일성 광장에서 개최된 김일성 추도식 및 목란관에서 개최된 '장례식 참석 해외동포들을 위한 위로연'에 참석함

-1996. 9. 13.부터 9. 15.까지 중국 북경 쉐라톤호텔(長城大飯店)에서 남북해외학자 34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통일의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로 개최된 제2차 남북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에 해외대표단 단장으로 참석한바, 위 회의과정에서 북한에 이로운 발언을 잇달아 함

2.피고인은 반국가단체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하면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1991. 5. 10. 독일 베를린에서 항공편을 이용하여 북한에 들어가 평양 소재 명칭 미상 초대소에서 체류하면서,

○ 5. 13. 인민경제대학을 방문하여 북한 교육부장과 동대학 총장 김국훈의 접견을 받고, 동 대학 교원 및 학자들과 학술좌담회를 개최하고,

○ 5. 20. 위 사회과학원 소속 학자들의 안내로 평양 소재 김일성 종합대학을 참관하고, 그 자리에서 위 북한측 인사들에게

-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과 친애하는 김정일 선생님께서 베풀고 계시는 크나큰 배려와 보살핌에 깊이 감동되었다. - 이처럼 훌륭하고 현대적인 교육조건을 갖춘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모두 재능 있고 쓸모 있는 민족간부로 자라날 것이다.

라고 말하는 등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찬양하거나 북한 교육체제의 우월성에 동조하는 발언을 함

나. 위 한국학술연구원 원장으로 활동하던 김길순이 1987년 위 연구원을 폐쇄하자 북한으로부터 운영자금을 받아 위 연구원을 재개설하기로 마음먹고, 베를린 주재 ! 북한 이익대표부를 통하여 입북 희망의사를 전달하여 위 사회과학원으로부터 위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입북하라는 지령을 받음

다. 1992. 7. 초순경 위 피고인의 집에서 북한'조선사회과학자협회'부위원장 리지수(전 주체과학원 원장)로부터 "전번 방문 때 선생이 요구한 주체의 사회주의 정치 경제 철학과 관련한 자료를 준비하였습니다. 1992년 9월이나 10월 중 편리한 시기에 방문하면 우리 전문가들과 토론할 기회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초청장을 수령함으로써 평양에서 개최되는 '주체철학 토론회'에 참석하라는 지령을 받고 입북함

3.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을 목적으로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하여 반국가단체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하면 처벌받고,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 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하면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함

4.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 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과 북한공산집단이 소위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높이 받들어 모시며 노동당의 위대성 선전을 강화하기 위해

가.1996. 12. 일자미상경 위 피고인의 집에서 김정일과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문구를 기재한 소위 '설 명절 축하편지'를 베를린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를 통하여 김정일에게 발송하고, 그 직후 위 편지가 북한 언론에 보도되게 하고

나. 1997. 2. 일자미상경 위 피고인의 집에서 위와 같은 내용의 소위 '경애하는 장군님 탄생 55돐(1997. 2. 16.) 축하편지'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김정일에게 발송하고, 그 직후 위 편지가 북한 언론에 보도되게 하고

다. 1997. 4. 일자미상경 위 피고인의 집에서 위와 같은 문구를 기재한 소위 '위대한 수령님 탄생 85돐(1997. 4. 15.) 축하편지'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김정일에게 발송하고, 그 직후 위 편지가 북한 언론에 보도되게 하여

각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연락함

5. 피해자 황장엽이 1998. 6. "송두율 교수를 잘 알고 있다. … 북한 통치자들은 남한 학생들과 독일에 있는 남한 유학생들을 끌어당기기 위하여,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목적에 이용하기 위하여 그를 '김철수'라는 가명 밑에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하고 김일성이 접견한 사진을 신문에 크게 보도한 바 있다. …"라는 내용이 기재된 '북한의 진실과 허위'라는 책자를 발간 배포하자, 사실은 피고인이 제1항과 같은 경위로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된 사실이 있고, '김철수'라는 가명을 사용한 사실이 있으며, 김일성 사망 직후 구성된 국가장의위원회의 장의위원 중 서열 23위의 '김철수'가 피고인임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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