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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신학철-우리가 만든 거대한 상' 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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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철'이란 이름은 한국 미술계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1980년대 초에 발표한 '한국 근대사' 연작에서 근작 '한국 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까지 지난 20여년 시대와 호흡을 같이 하며 역사를 꿰뚫어 보는 눈을, 그 '무장된 시선'을 변함 없이 지켜온 화가다. 미술평론가 성완경씨는 그런 그를 "민중의 애환과 희망을, 그리고 민족적 역사 전망의 숨결을 불어넣은 바리케이드 위의 공공미술가.역사화가.농민화가.노동운동 미술가"라고 불렀다.

21일부터 12월 21일까지 서울 동숭동 문예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 전관과 소갤러리에서 열리는 '신학철-우리가 만든 거대한 상(像)'은 60년대 홍익대 시절부터 최근까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그의 작품 1백20여점을 한 자리에 모은 회고전이다.

마로니에미술관이 마련한 '대표작가 초대전' 일곱 번째 순서인 이번 전시는 회갑을 맞는 작가에게 91년 제1회 민족미술상 수상작가전 이후 12년 만에 여는 생애 세 번째 개인전이 된다.

신학철 작품세계를 압축해 보여줄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는 화폭 16점으로 이뤄진 20여m짜리 대작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갑순이와 갑돌이, 곧 우리 사회의 실질적 주역이었던 촌놈들이 50~90년대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담은 벽화 형식의 '서민사'다. 제1전시장을 가득 채운 이 도해공간에는 힘이 넘치는 민중사가 신학철 특유의 사진 몽타주로 어떻게 진화되었는가를 살필 수 있는 자료와 밑그림이 함께 나와 그의 작업 방법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한국현대사 - 갑순이와 갑돌 이' <크게보기>

"'옆으로 가는 한국 현대사'인 셈이다. 역사적인 굵직한 사건들을 소재로 다룰 때는 그림이 위로 솟구쳤는데 서민들을 등장시키니까 화면이 저절로 옆으로 누웠다. 그들이 한 자리에 나란히 서니까 지난 반세기 한국 사회를 밀어온 힘이 화면에서 들끓는 듯했다. 군부독재의 폭압과 재벌들의 횡포 밑에서 생존을 위해 아귀다툼하던 것, 그 엄청난 소화불량이 괴기한 에너지가 된 셈"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제2전시장은 '신학철의 현장'이다. 66년 작 '자화상'부터 근작 '이라크전'까지 현재진행형으로 그가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는 정치적 주제가 펼쳐진다. "좀 누추하지만 내 식대로"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는 우리 삶을 옥죄어온 전근대적이고 폭압적인 군사정치 문화와 미국,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광기를 묵묵히 그림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의 회화는 이야기책이요, 역사책이다. 기록 사진.잡지 화보.광고지가 모두 그의 그림들 속에 모여 앉는다. 시대가 그대로 들어앉는 것이다. 그는 "나의 그림은 잡설이나 논설 또는 소설이다. 달콤하거나 씁쓸한 맛과 같은 것을 즐기려는 것도 아니고 고상한 척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공격 목표를 향한 무기가 되었으면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모내기방'이라 이름붙인 소갤러리의 전시는 '빨강'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사회의 검열 강박증을 증언하는 표본실이다. 작가의 고향인 경북 금릉을 그린 그림 '모내기'가 김일성 생가가 있는 북한과 매판자본이 판치는 남한을 은유한 이적 표현물 혐의를 쓰고 10년 넘게 법정 공방을 벌인 문화적 투쟁 과정을 각종 자료로 살펴볼 수 있다.

또 이 '모내기 사건'을 풍자한 안종관씨의 희곡에 바탕한 연극 '한반도 근현대사 콜라주'가 극단 작은신화의 공연으로 21일 오후 5시30분과 22~23일 오후 2시. 6시 전시장에서 펼쳐진다. 02-760-4605.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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