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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쉼] 베짱이 예찬

중앙일보

입력

생선과 고추절임으로 만든 공짜 안주.

# '금주' 공든 탑 무너지다

'로그로뇨의 결의'를 깨고 술을 다시 입에 댄 날은 하루 41㎞라는, 스스로도 믿기지 않은 기록을 세운 날이기도 했다. 아침 6시 이전엔 나갈 수 없다는 알베르게의 규칙을 어기고 새벽 4시에 길을 떠나(순전히 시간을 착각했기 때문이다) 사아군에 이르른 시간은 땅거미가 질 무렵. 일요일에 서는 새벽시장으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알베르게로 직행했다.

장시간을 바게트와 과일로 때운 터라 사자라도 한입에 삼킬 듯 배가 고팠다. 알베르게 식당에 들렀더니 로그로뇨 번개모임(1월 12일자 참조)의 일원이었던 벤과 그의 일행이 "수키!" 하며 반가워한다. 그들 앞에 놓인 먹음직한 샐러드가 더 눈에 들어왔다. 누가 줬다면서 내게도 권한다. 배고프다고 얼굴에 써 있었나? 벤에게 샐러드를 나눠줬다는 프랑스 여자 프란체스카는 남자친구가 만든 리조토까지 들고와 권했다. 막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누군가가 "비노(와인)도 한 잔" 하며 따라준다. 열흘 공든 탑이 단번에 무너져내렸다. 후회하기엔 오랜만에 마신 포도주맛이 너무도 황홀했다(술 좋아하는 사람의 자기합리화!).

# 슬럼프를 한방에 날리다

'마의 벽' 40㎞를 넘어선 뒤부터 예기치 못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사아군을 벗어나 플라타너스가 늘어선 밋밋하고 평탄한 길을 지나는데 문득 '내가 지금 무슨 미친 짓을 하는 걸까' 회의가 엄습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떠나왔는데 고국에서 추방당한 사람마냥 처량하게 느껴졌다. 걷기에 이력이 붙고, 어젯밤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냈는데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는다. 사아군을 벗어나자마자 쏟아진 장대비를 피하느라 버려진 병원 건물 처마 밑에서 한참을 옹숭그리고 있었기 때문일까, 어느 순례자의 돌무덤 앞에서 길을 걷다가 그 길에서 죽어간 이를 추념(追念)한 때문일까. 비는 얼마전부터 멎었는데도 마음의 벌판에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그러던 중에 발길을 멈춘 작은 마을의 지독히도 어두침침한 바에서였다. 대낮인데도 가게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둘러보니 순례자(복장과 배낭만 보면 금세 알 수 있다)는 나 혼자, 나머지는 모두 마을 사람들이었다. 추운 마음을 데우려고 '카페 콘라체 그란데('밀크커피 큰 잔'이란 뜻)를 시켰다.

울적한 기분으로 커피를 마시는데 저쪽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내게 손동작으로 무언가를 먹어보라고 자꾸 권한다. 조그맣게 자른 식빵에 올리브에 절인 생선과 피멘토(고추)절임을 얹은 안주였다. 여전히 머뭇거리자, 돈을 안 내도 되는 공짜 안주(스페인 바 중에는 공짜 안주를 내놓는 곳이 더러 있다)라고 손동작으로 열심히 설명한다. 계속 모른 체하기도 미안해서 한 개 집어먹은 뒤 맛있다(물론 손동작으로)고 했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이번엔 사람좋게 생긴 주인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와인잔을 내밀었다. 와인을 시킨 적이 없는지라 손사래를 치자 가슴팍을 두드리면서 자기가 낸단다. 망설이다가 한 모금 마시니 바에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한다.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공짜 화이트 와인을 한 잔 마시는 사이에 이방인의 우울증은 씻은 듯 사라졌다. 그들의 친절이 명약이었던 걸까.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의 수퍼 점원 아가씨들.

오래된 좋은 포도주처럼 향기로운 사람들이 바로 에스파뇰(스페인 사람)이다. 인간미 넘치는 에스파뇰들은 스페인의 산하를 더 아름답게, 산티아고 여정을 더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밭 둔덕에서 해바라기하고 있는데 단물이 줄줄 흐르는 싱싱한 멜론에 먹음직한 토마토까지 얹어줘 배낭을 더 무겁게 만든 아저씨도, 마을 언덕의 잘생긴 무화과나무를 찍고 있는 내게 잘익은 그 열매를 꼬옥 쥐어주면서 부챗살 같은 미소를 짓던 할머니도.

대가 없는 친절을 베푸는 그들을 보노라면 800㎞를 걷는 순례자들보다도, 그 길을 지키고 사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페레그레노(순례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주어진 인생길을 묵묵히, 그러나 즐기면서 걷는 삶의 순례자들!

안주와 와인을 공짜로 준 바 주인.

# 시에스타가 비결이었다

레온(leon), 웅장한 고딕식 대성당으로 유명한 레온 지방의 주도(州都). 이 도시는 산티아고 순례자라면 예외없이 하룻밤 묵어가는 곳이다.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호텔이나 호스탈에서 2~3일 묵으며 모처럼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 한꺼번에 한달이라는 긴 시간을 내지 못하는 이들은 레온에서 일단 여정을 갈무리한 뒤에, 다음번엔 레온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순례길의 중요한 거점인 셈이다.

무화과를 따서 손에 꼭 쥐어준 할머니.

나를 놀라게 한 건 도시의 규모가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레온 사람들도 농촌 사람들과 그닥 큰 차이가 없어보였다. 한없이 느긋한 표정, 여유있는 걸음걸이, 인생을 즐기는 태도. 에스파뇰이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어, 농촌이나 그렇지 도시 사람들은 다르겠지, 내 삐딱한 기대(?)는 보기좋게 배반당했다.

대성당을 둘러보고 난 뒤 도시 외곽의 알베르게로 돌아가려는데, 길치 아니랄까봐 왔던 길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는 수밖에. 내게 붙들린 에스파뇰들은 한결같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에게 이 멋진(!) 과제가 떨어져 무척 기쁘다는 표정으로, 손짓 발짓 몸짓을 총동원해서 가르쳐 주었다.

여러 사람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어렵사리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옆 침대 남자가 반갑게 맞이한다. 여러 번 같은 숙소에서 만나 낯이 익은 영국인 로버트다.

그는 30년 넘게 군생활을 하다가 대령으로 전역한 퇴역 장교. 아직도 엄격한 규율 아래 한평생 살아온 군인의 얼굴이 남아 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에스파뇰이 한결같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가 뭘까'가 화제에 올랐다. 군인 출신답게 그의 결론은 단순 명쾌했다.

"시에스타 덕분이다. 적게 일하고 많이 쉬니까 해피할 수밖에."

점심시간에 관공서와 상점의 문을 닫고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는 외부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기 힘들지만 더 나아가 순례자에게는 매우 고약한 관습이다. 산과 들을 지나 가까스로 마을에 당도해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도 사고 장을 보려고 해도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불가능하다. 상점에 아무리 예쁜 물건이 많고 풍성한 식재료가 있으면 뭐하나? 그림의 떡이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띤 복권 파는 아저씨.

이런 황당한 일을 자주 겪다 보니 '시에스타'를 은근히 적대시하는 감정까지 품게 되었는데, 이 멍청하고도 불합리하게 보이는 관습이 에스파뇰을 행복하게 만든 비결이라니! 그러고 보니 '슬로 라이프'를 제창한 쓰지 신이치도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 쓰는 '아스타, 마니아나'(내일 하자, 내일!)와 일본 대중가요 '내일이 있다'를 비교했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근심 걱정을 미루고 바로 지금 소중한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기는 데 반해 일본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흔히들 스페인 사람과 한국 사람은 닮은 데가 많다고 한다. 종교적이면서도 현세지향적이고 감정이 풍부하고 신명이 많고 가부장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체험도 비슷해서 스페인 역시 이민족에 오랜 기간 침탈을 당했고, 치열하고도 고통스러운 내전 후에 프랑코 총통 치하에서 40년 넘는 장기독재를 경험했다. 국민소득이나 생활 수준도 엇비슷하다.

그러나 두 나라는 삶의 속도라는 측면에서는 극히 대조적이다. 스페인은 문명화된 산업국가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슬로 라이프'를, 한국은 그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숨가쁜 '패스트 라이프'를 구가한다.

사진기를 들이대자 흔쾌하게 포즈까지 취해 준 목동 아저씨.

24시간 잠들지 않는 나라, 사느라고 바빠서 정작 삶을 누리고 즐길 만한 여유가 없는 사회, 낮에는 직장일로 밤에는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술자리로 심신이 녹초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평균적인 직장인들. 로버트 대령의 분석대로라면 '불행할 수밖에 없는 나라' '불쌍한 사람들'이 되는 셈인가?

서명숙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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