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스파이·보복·아편 판매 … 그가 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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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저우언라이 평전

바르바라 바르누앙.
위창건 지음,
유상철 옮김, 베리타스북스 448쪽, 1만8000원

조직의 배신자에겐 그 가족에게까지 보복을 서슴지 않았다. 아편 전쟁으로 촉발된 망국의 비탈에서 나라를 구하겠다고 공산주의에 투신했지만 한때 아편 판매 조직을 총괄했다. 아편을 판 돈으로 공산당 지하조직을 꾸렸다. 산전수전을 같이 했던 직속 부하들이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에 쓸려갈 때 눈을 감았다.

마오저뚱(毛澤東)의 눈 밖에 날 일이었다. 중국 인민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 단골 1위, 온화한 리더십의 상징인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의 정치 역정엔 이런 비정한 마키아벨리스트의 면모도 있었다.

저우의 정치 인생을 다룬 책들이 500권 이상 쏟아졌지만 대부분 저우가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은 무결점의 철인(哲人)이라는 설정을 맴돌았다. 신격화된 저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마오를 이은 덩샤오핑 정권은 문혁으로 만신창이가 된 당의 권위를 되살리고 새로운 중국을 대표하는 역할 모델로서 저우를 주목했다. 저우를 통해 반제국주의 혁명 등 인민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들을 되짚으며 당의 정통성을 회복하자는 전략적 고려가 작용했다.

제네바 국제대학원 연구위원 바르바라 바르누앙과 저우의 비서 출신 외교관 위창건이 함께 쓴 이 책은 '관변' 저우 평전들의 한계를 의식하고 나온 저작이다. 기존 전기 작가들이 무시했던 1920~40년대 저우의 특과(特科.스파이 조직)활동 등을 깊이 다루며 정치 상황에 따라 표변하는 저우의 행보를 추적했다.

이 책의 진수는 마오와 저우의 권력 서열이 뒤바뀐 1935년을 재구성한 데서 두드러진다. 두 지은이는 마오의 권력 장악 과정에서 최대 미스터리였던 저우의 2선 후퇴의 내막을 벗겼다. 국민당군에 쫓기던 공산당은 구이저우(貴州)성 쭌이(遵義)에서 마오를 3인 지도부에 발탁한다. 저우의 지원이 결정적 계기였다. 당 서열이 최고위급이었던 저우는 농촌 중심의 혁명 노선을 구체화한 마오의 천재적 전략 감각에 당의 운명을 걸었다.

저우는 이후 마오의 뒤에서 평생 2인자로 처신한다. 지은이들은 유년시절 유교 교육과 애국정신에 심취했던 소년기의 교육적 배경이 "대의를 위해서라면 첩도, 매춘부라도 될 수 있다"는 신념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이런 자의식이 변덕스러운 마오 뒤에서 풍파를 견디고 정치적으로 살아남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것.

두 지은이는 "대의명분을 찾아 정치 역정에 들어섰지만 폭군으로 변한 마오에게 봉사한 것으로 생애를 마감했다"고 냉정하게 평했다. 하지만 만년의 저우는 부인에게 "가슴에 묻어두고 하지 않은 말이 너무 많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인내의 화신이었다. 책 곳곳에서 이런 저우의 내면과 마주치다보면 시대의 절대권력 아래서 고뇌했던 한 인간의 비애가 느껴진다. 중국 인민들이 저우에게 보내는 무한 애정에는 애틋한 연민의 정도 있을 것이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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