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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마지막날의 명동(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정오 미사를 알리는 명동성당의 종소리는 유난히 해맑았다.
6월의 마지막날 명동은 투명한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오가는 시민들의 가벼운 발걸음으로 활기가 넘쳤고 평온해 보였다.
『명동이 시위대 구호와 함성으로 뒤덮이고 수배자의 도주를 막기위해 경찰의 검문검색이 계속된 지난 두달간 명동은 죽어있었어요. 낭만마저도 돈으로 환산되는 이곳을 지키는 우리로서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원망뿐이었습니다.』
장마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한차례 장대비가 그동안 찌든 최루가스를 씻어낸 명동의 한 상인은 현재의 기분을 한마디로 「해방감」이라고 표현했다.
1일 오전 9시,「평화의 거리」명동의 「파수꾼」명동파출소와 중부경찰서 직할 영희파출소에서는 굴레처럼 씌워져 있던 방석망이 제거됐다.
그러나 국민회의 간부들이 40여일간 농성했던 명동성당구내 문화관 2층은 아직도 명동의 상흔과 시대의 아픔이 「제거」되지 않은채로 남아 있었다.
문화관 한구석에 남은 때묻은 담요,못쓰게된 우산과 헌구두 그리고 각종 유인물은 성당과 경찰의 압력속에 철수시한을 지키기위해 서둘러 신변을 정리해야 했던 농성자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하느님,당신이 살아계신다면 이 시대의 모순을 바로잡고 진정한 평화와 자유가 넘치는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우리의 정당한 노력을 알아 주시리라 믿습니다.』
잔인했던 6월의 마지막날 한 농성자가 신문지 여백에 또박또박 쓴 낙서의 문구를 발견하면서 명동의 평화가 깨지지 않기위한 「전제조건」이 무엇인지를 새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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