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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재개관展 '유희삼매' 20일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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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흙벽에 종이창을 내고/평생토록 벼슬하지 않으며/시와 음악 속에 살아가리."조선시대 화원이었던 단원 김홍도가 '포의풍류도'(그림)에서 그린 선비의 모습이다. 조선시대 5백년이 낳은 정신과 가치체계의 결집체라 할 선비는 도덕군자이면서 또한 예술을 즐길 줄 아는 멋쟁이였다. 명필로 이름난 송하옹 조윤형(1725~99)은 그 경지를 '유희삼매(遊戱三昧)'란 한마디에 담았다.

15년 전 서울 인사동에 문을 연 고미술전문화랑 학고재(대표 우찬규)가 그 자리에 지하 1층.지상 4층으로 새 건물을 올리고 마련한 재개관 기념전이 '유희삼매-선비의 예술과 선비취미'다.

송나라 주휘유의 서재 이름인 '학고재(學古齋)'를 따 이름지었을 만큼 그림과 글씨에서'옛것을 배운다'는 화랑의 초심은 가파른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우찬규 대표는 "옛것에서 오늘의 답을 발견할 때 옛것의 가치는 새롭다"며 "옛날 선비의 세계에 녹아든 단아한 취미를 맛보며 오늘 인사동의 정신을 되새겨보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20일부터 12월 2일까지 열리는 '유희삼매'전은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명품이 처음 선보이고 몇 십년 만에 개인 소장가들이 내놓은 고서화가 어우러져 풍류가 난만한 자리가 되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부터 근대까지 일흔여덟점의 그림과 글씨가 선비들의 검소하고 담백한 취향을 반영하며 사랑방을 꾸몄던 목기와 도자기.문방구 등과 어울려 선비의 멋이 절로 풍긴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완성한 겸재 정선(1676~1759)이 충북 단양의 절경을 그린 '구학첩(丘壑帖)'은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의 유명한 발문인 '구학첩발'과 나란히 선보여 당대 문인들의 뜻깊은 교유를 엿보게 하는 미공개작이다. '구학'은 언덕과 골짜기란 뜻으로 '봉서정' '삼도담' '하선암'세곳의 실경을 다뤘는데 관아재는 이 중 '하선암'을 높이 평가해 이런 글을 붙였다. "지금 겸재의 필의를 보니, 근원을 찾아가려다가 끝까지 가지 못하고 결국 쓸쓸한 마음으로 돌아온 것 같구나."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손꼽히는 의관 출신의 서화 수장가였던 석농 김광국(1727~97)이 남긴 화첩'석농화원(石農畵苑)'에 들어있던 외국 전래품 세 점이 출품된 것도 이번 전시의 수확이다. 미술사가인 이동주 선생이 처음 언급해 세상에 알려진 두점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판화가 피터 솅크의 동판화'술타니에 풍경'과 일본의 채색화인 '우키요에(浮世繪)'로, 18세기 선비들이 외국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좋은 증거다. 동판화의 작가와 제목을 확인한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당시 지식인 사회의 서양화에 대한 호기심, 곧 이국 취미를 확인하는 동시에 조선 후기 서학의 수용 범위를 알려주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북학파 실학자인 초정 박제가(1750~1805)의 화첩이 처음 공개된 것도 화제다. 호암미술관이 네폭을 소장하고 있는 석창 홍세섭(1832~84)의 여덟폭 '영모 병풍'의 나머지 네폭이 발견된 것도 흥미를 던져준다. 큰 물건이 나오면 쪼개서 팔던 화상들의 풍습을 반영하는 사례다.

2년여 전부터 함께 전시를 준비한 유홍준.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미술품 수집이 재산증식의 수단으로만 잘못 이해되는 현실에서 이런 문화재급 작품들을 볼 줄 아는 안목으로 보존해 오고 선뜻 출품해준 개인 소장가들의 뜻을 살리고 싶었다"고 전시 취지를 밝혔다.

24일 오전 10시부터 유홍준 교수가 길라잡이가 되어 전시 작품을 깊이있게 관람할 수 있는 설명회가 열린다. 입장료 일반 2천원, 학생 1천원. 02-739-4937.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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