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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천·지·인 합작품 … 그 속엔 드라마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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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2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과 인사동 레스토랑 '민가다헌'에서 저자인 '아기 다다시' 남매를 만났다. 40대 후반의 누나는 아사히신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등에서 활약해온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요즘은 어린 두 딸(9세, 6세)을 돌보느라 만화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누나보다 네 살 아래인 동생은 와세다대 정치경제학과를 나온 잡지 편집기자 출신. 누나와 함께 작업한 '신의 물방울''사이코 닥터''미스터리극장 에지'외에도 여러 필명으로 다양한 작품을 써온 인기작가다. 이지적인 미모의 누나와 긴 은발을 단정히 묶은 동생은 인터뷰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신의 물방울' 집필 동기는.

"와인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싶었다. 와인의 세계는 인생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와인을 안 마셔본 사람도 맛과 향을 간접 경험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했다."

-와인의 어떤 점에 매료됐나.

"10년 전 '로마네콩티 에세조 1985'를 만났다. 새 세상이 열린 느낌이었다. 이후 와인 속에 숨은 사연과 메시지에 주목하게 됐다. 와인은 '천(天).지(地).인(人)의 조화, 즉 기후.토양.인간 노력의 합작품이다. 저마다 다른 역사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와인의 색과 향, 맛을 음미하다 보면 그 안에 숨은 '드라마'들이 얼굴을 내민다. 우리는 그것을 끄집어내 이야기로 엮을 뿐이다."

-예를 들면 어떤 드라마인가.

"만화에서 '샹볼 뮤지니'를 접한 주인공은 원생림에서 관능적 사랑을 나누는 꿈을 꾼다. '팔머99'는 모성애로 가득한 모나리자를 연상케 한다. '샤블리'를 마신 등장인물은 눈물을 쏟으며 고향에 돌아가 소꿉친구와 결혼하는 상상을 한다. 그런 것들이 바로 와인이 담고 있는 드라마다."

-대단한 와인 수집가라 들었다.

"둘이 합쳐 2500병 정도 있다. 한화로 1억원어치는 될 것이다. 18평 맨션 세내 와인셀러로 쓰고 있다. 24시간 에어컨 돌려 섭씨 16~18도를 유지한다."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나.

"일단 와인에 눈뜨고 나면 투자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와인이든 무엇이든 자기 돈을 써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남이 사준 것은 맛이 없는데도 괜찮다 할 수 있고, '공짜니까 이 정도면 됐다'는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너무 비싸 둘이서 구매가 불가능하면 친구들과 힘을 합친다. 와인 한 병은 12잔까지 나온다. 맛보는 것이 중요한 만큼 공동 구매하면 부담이 확 줄어든다. 무엇보다 가능성 있는 저가 와인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와인 감별은 쉽지 않다.

"우리도 처음엔 잘 몰랐다. 계속 마시다 보면 절로 알게 된다. 월급의 반만 투자해 보라. 그러다 어느 순간 파산하겠지만(웃음). 미각은 잠들어 있을 뿐 자극을 주면 깨어난다."

-'신의 물방울'이 한국 와인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 만화에 등장한 와인만 동나고 값이 뛰어오르는 기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신의 물방울'은 한국 와인 시장에 '약이자 독'이란 평가도 있는데.

"만화에 등장하는 와인은 우리 둘의 취향일 뿐이다. 자기만의 맛을 찾는 게 중요하다. 사실 일본에서도 특정 와인이 (만화에) 등장하면 바로 동나 버리기 때문에 와인을 선정하면 인쇄가 돌아가기 전 미리 잔뜩 사놓는다(웃음)."

-한국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은.

"스파이시한 음식이 많아 칠레 등 제3세계 와인이 어울릴 듯하다. 홍삼 절편과 함께 마신 샤토 살롱 2003, 제주오겹살에 곁들인 피안 델레 비녜 2000도 맛있었다. 올해 안에 한국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만화를 드라마로도 만든다던데.

"한국의 몇몇 제작사로부터 판권 구매 제안을 받았다. 만약 드라마로 만든다면 주인공 간자키 시즈쿠는 송승헌씨, 라이벌인 도미네 잇세는 배용준씨가 연기해 주시면 좋겠다. 우리는 한류 드라마의 열혈팬이다."

-와인에 대해 한국 사회와 일본 사회의 인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와인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나 마시는 것이란 이곳 분위기는 정말 뜻밖이다. 일본에선 선술집, 닭꼬치집에서도 소주 시키듯 와인을 시켜 먹는다."

-한국의 와인 시장은 일본보다 15년 정도 뒤떨어져 있다고 하는데.

"일단 와인값이 너무 비싸 놀랐다. 같은 와인인데 일본보다 두 배, 심지어 세 배 비싼 것도 있더라. 우리는 3000엔(약 2만4000원) 이상의 와인은 비싸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품질에 비해 유난히 저렴한 와인도 있다. 값을 매기는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화이트 와인이나 로제 와인은 거의 소개하지 않고 있는데.

"화이트 와인은 할인점에서 대충 사도 실패할 확률이 낮다. 반면 레드 와인은 복잡해서 처음 선택을 잘못하면 '와인은 맛없다'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 또 하나, 레드 와인은 보다 다층적이라 스토리를 끄집어내기가 쉽다. 하지만 물론 좋은 화이트 와인도 많다. 계절적으로 어울리는 이번 여름쯤에는 등장시킬 예정이다. 12사도 중에도 화이트 와인이 있다."

-만화를 보면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와인에 대한 '편애'가 엿보인다.

"와인 하면 프랑스 보르도 지방이 유명하지만, 거기만 해도 규모가 너무 크다. 부르고뉴 와인은 작은 농가에서 소규모로 만들다 보니 만드는 이의 개성과 정성이 고스란히 농축돼 있어 좋다."

-제3세계 와인, 특히 미국 와인을 홀대하는 느낌이다.

"미국 와인은 생산성, 품질의 균일성을 중시한다. 100㎞까지만 잘 달리도록 만든 자동차 같달까. 또 비나 우박이 오면 포도에 비닐을 씌워 보호한다. 반면 프랑스에선 자연상태 그대로 재배한 포도로 매년 다른 맛의 와인을 생산한다. 그만큼 자연친화적이고 깊이가 있다."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 고기에는 레드 와인'이란 등식이 있다. 과연 그런가.

"생선 요리도 소스가 강하다면 레드 와인이 어울린다. 요컨대 '규칙은 없다'는 것이다. 같은 참치라도 도로에는 보르도, 대뱃살에는 부르고뉴가 제격이다. 부르고뉴 와인은 야채 중심 요리나 스시에도 잘 어울린다."

-와인은 계급적 음료라는 말이 있다. 한국 사회의 일반적 인식도 그렇다.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와인은 부유한 사람, 똑똑한 사람들만을 위한 술이 아니다. 기쁘거나 슬플 때 친구처럼, 혹은 친구와 같이 마시며 힘을 얻을 수 있는 신의 축복이다. 한국에서도 더 많은 이들이 부담 없이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때가 오길 바란다. 우리 만화가 그런 변화에 작은 힘이라도 된다면 참 기쁘겠다."

이나리 기자<windy@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신의 물방울'=2004년 11월 일본 만화 주간지 '모닝'에 연재를 시작했다. 국내에는 2005년 11월 소개됐다. 주인공은 일본 최고의 와인 평론가 간자키 유타카의 친아들 간자키 시즈쿠. 유타카는 시즈쿠와 양아들인 와인 평론가 도미네 잇세에게 "내가 '12사도'로 명명한 12종의 와인과 '신의 물방울'이라 칭한 하나의 와인을 찾아내는 이에게 모든 재산과 엄청난 규모의 와인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한다. 아버지로부터 알게 모르게 '와인 영재 교육'을 받은 시즈쿠와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와인 평론가 잇세는 불꽃 튀는 경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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