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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베를린 「분단과 통일」교향곡 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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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독일은 기차여행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나라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스위스 등 다른 유럽국가의 기차도 수준급이고 시간을 갈 지키는 편이지만 독일의 연방철도(DB)는 기가 막힐 정도로 시간이 정확하다.
기차시설 또한 다른 나라보다 우수하고 깨끗하다. 정확성의 측면에서 독일연방철도는 서유럽 어느 나라의 기차보다 뛰어나다.
예컨대 기차시간표에 적혀있는 시각이 「함부르크 중앙역(하우프트반호프·Hbf) 도착8시22분」이라면 역의 이름을 확인해보지 않고 8시22분에 시간을 맞춰 내리면 정확히 들어맞는다.

<1분도 오차 없어>
독일어에 익숙하지 않을 경우 가고자 하는 도시, 내리고자 하는 역이 어디쯤인지, 언제 내려야 할지 불안하게 마련인데 이때 자신이 내려야할 도시와 역에서 기차가 멎을 시간을 정확히 적어두면 그 시간만 보고 내려도 될 정도다.
독일의 연방철도가 어떻게 1분의 오차도 없이 시간을 지키는지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정확함」의 정신, 「철저함」의 정신이 오늘의 독일을 이룬 저력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동독에 둘러싸인 고독한 도시 서베를린, 적어도 독일통일 전까지는 그랬다. 사람들은 서베를린을 자유베를린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젠 이념대결의 흔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은 이름이지만 서독에서 서베를린으로 들어가는 버스나 기차는 모두 동독의 땅을 달려야했다.
남북이 분단된 상태로 40여년을 지내온 우리에겐 이러한 지정학적 분할 속에서 어떤 형대로든 민족의 교류를 가져온 게르만민족의 민족성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베를린에 가기 위해 옛 동독 땅을 지나며 만약 평양의 반목, 아니 개성의 반쪽이 서베를린과 같았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독일의 대부분 도시는 걸어다니며 도시 전체를 감상할 수 있지만 베를린은 서울이나 런던을 연상케 하는 메트로폴리탄이다. 독일 어느 도시보다 규모가 크고 복잡하다.
더욱이 베를린은 동서로 분할되어 동서냉전을 상징하는 도시로서 최근 통일이 되기까지 독일현대사의 상흔을 한 몸에 안은 도시로 존재해왔다. 남북 분단상태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베를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도시다.
그러기에 베를린 여행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서유럽 각 나라 여행에서 늘 보고 듣는 역사유적과 박물관·미술관답사 이외에 현대사의 격동과 동시대 사람들의 삶이 급격하게 변화된 모습을 한눈에 실감할 수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베를린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2∼3일은 필요하다.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하루씩보고 마지막날에는 특별히 보고 싶은 곳, 예컨대 베를린 근교의 포츠담 같은 곳을 가보면 여러 가지로 의미있는 여행이 될 듯하다. 물론 저녁나절에는 번화한 서베를린의 분위기를 한껏 만끽해도 좋을듯하고 운이 좋으면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베를린필이 아니더라도 도이치 오페라극장에서는 「세빌랴의 이발사」 「나비부인」「투란도트」같은 오페라가 일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올려진다. 오후6시30분 정도가 되면 정장을 한 노부부나 젊은이들이 하나둘 도이치오페라 주변에 모이기 시작하고 극장의 휘황찬란한 불빛은 이방인의 마음을 끈다. 오페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한번정도 가 볼만한 곳이다.
베를린은 통일 이후 몸살을 앓고 있다.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이 서로 이념을 달리하는 체제에서 분단되어 있을 때에도 통일된 상태로 달렸던 지하철에는 각종 구호가 현란하다.
베를린의 현관인 서베를린 초로기서가르텐역(베를린에 있는 동물원 앞에 세워진 역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진 역)에 들어서면 서독의 부유함과 번화함을 한눈에 보고 느낄 수 있다.

<공해에 찌든 하천>
그러나 불과 네댓 정거장 뒤인 프리드리히 슈트라세 역이나 마르크스-엥겔스 광장역까지 가보면 삽시간에 도시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어둠침침한 거리, 매연에 그을린 흑회색빛 건물, 공해에 찌든 시커먼 물이 흐르는 하천, 동베를린은 침울한 표정을 지닌 도시다.
동서독 통일의 현장 브란덴부르크 문에 서본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에 익숙한 탓인지 브란덴부르크 문은 특별히 친근하게 다가온다. 브란덴부르크문은 그날의 함성을 애써 기억하려는 듯 비를 맞으며 우뚝 서있다.
약삭빠른 상인들은 「벽 조각」을 비닐봉투에 넣거나 유리상자에 넣어 1∼2마르크에 팔려고 야단이다. 레닌배지·스탈린배지·고르바초프배지, 심지어 동독공산당의 당원증까지도 몇 마르크만 주면 살 수 있다. 이제는 역사박물관의 유물로나 보존될 신세가 돼버린 동독군인의 모자며 군화·외투 등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구경하는 여행객들로 브란덴부르크문 주위는 번잡하다.
브란덴부르크문 가까이 위치한 제국의회 의사당은 꼭 가 볼만한 장소다. 석조건물로 외벽에는 2차대전 중에 박힌 총탄의 흔적이 무수하다. 베를린이 대독일제국의 수도였음을 웅변해주고 있다. 20세기초부터 현재까지 독일의 역대 총리들 사진과 의회관계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어 훌륭한 역사교육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동베를린은 재미있는 도시다. 각 나라의 대사관과 영사관이 브란덴부르크문 주위에 모여 있고 역사박물관·페르가몬 박물관·보데 박물관·국립미술관 등 박물관이 마르크스-엥겔스광장역 주위에 섬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초행길의 외국여행객들에게는 매우 친절한 도시라는 인상을 준다. 각 건물을 찾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이 모두 철저한 도시계획과 안배에 의해 가능했겠지만 서유럽의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계획적인 도시라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을 짓게 한다.
동베를린의 박물관을 살펴보는데는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특히 페르가몬박물관은 기원전4세기께 터키지역의 페르가몬 왕국의 유물을 19세기에 발굴하여 송두리째 독일로 옮겨온 것으로 그 규모나 수준면에서 유럽 제1급을 자랑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서 나눠주는 해설 카셋테이프를 귀에 꽂고 박물관을 돌아보면 우리는 어느덧 기원전 4세기 페르가몬 왕국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눈길 끄는 박물관>
지금은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공개되어있는 샤를로텐부르크성은 원래 프리드리히1세의 왕비인 샤를로테의 여름별장으로 마련된 궁전이다. 내부에 선사초기 역사박물관·미술공예품 박물관이 있고 중국의 항아리나다기(다기)가 무수하게 장식된 방이 특별히 주의를 끈다.
국립달렘미술관에는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회화가 전시되어 있다. 홀바인·루스·렘브란트·보티첼리가 유명하다.
달렘미술관을 둘러본 후 신국립미술관을 보면 좋다. 여기에는 19세기부터 20세기의 회화와 조각이 전시되어있다.
르누아르·모네 등 프랑스 인상파와 뭉크·클레 등 독일 표현주의의 작품을 엿볼 수 있다.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곳은 벽박물관이다. 1961년8월 베를린 봉쇄 당시 시내모습과 동독에서 도망 나올 때의 여러 루트나 수단이 패널이나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다. 또 실제로 이용된 차나 여러 기구가 전시되어 있으며 벽을 소재로 이용한 그림이나 일러스트도 전시되어있다. 이러한 역사의 한 편린을 둘러보면서 독일이 통일되기까지 역사의 아픈 상처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미숙 <도서출판 한길사 기획부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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