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를 보는 시민의 시각(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시위를 해도 차는 지나가게 해줘야할 것 아니오. 학생들이 도로를 막고 구호를 외치는 것은 중요하고 저 뒤에 늘어선 차속에 갇혀 꼼짝도 못하는 시민들의 용무는 안 중요한줄 알아요.』
『죄송합니다.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고통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8일 오후 4시30분,서울 동대문운동장앞 8차선도로.
제5차국민대회에 참석하려는 학생과 근로자 7백여명이 도로를 점거한 가운데 한쪽에서는 시민과 학생사이에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의 러시아워로 차량수백대가 몰린데다 학생들의 도로점거로 갈길이 완전히 막히자 승용차들은 시위대를 향해 짜증스레 경적을 울려댔다.
버스에서 내린 50대운전사는 『손님들이 차속에서 얼마나 불편하는줄 아느냐』며 흥분했다.
시민들은 명지대생 강경대군 치사사건이후 잇따랐던 집회·시위에서 시위대에 박수를 보내고 구호를 따라하던 모습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오후 5시쯤에는 퇴계로6가에서 인근상인들이 학생들을 나무라는등 곳곳에서 시민들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4차국민대회까지 최소한 수만명이 넘었던 시위참가숫자도 격감해 최고 3천명쯤이었다.
오후 5시30분쯤 퇴계로4가 도로를 점거하고 있던 학생들은 경찰이 진압을 하지않은채 멀찍이서 바라만 보고 있자 30분만에 자진 해산해버렸다.
『학기말고사로 학우들의 동원이 어려운데다 정총리사건이후 여론조작으로 국민들이 폭행사건의 의미도 제대로 모른채 학생들만 매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위대선두에서 화염병을 들고 서있던 한 학생의 울분섞인 분석.
『잘못을 할 수 있지만 사과나 반성은 커녕 잘했다고 우겨대는 학생들과 재야측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다잡아들여 완전히 정리하겠다고 덤비는 정부도 한심하고….』
경찰과 시위대를 번갈아 쳐다보며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가야겠다』는 한 시민의 말이 바로 「민심」으로 들렸다.<김종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