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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 5공초 깨끗한 정치 다짐 임기중반 넘어서자「돈줄」챙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17면에서 계속>
김계원 전 비서실장이 들려주는 목격담.
『박 대통령의 가슴엔 여린 구석도 있었어요. 자기 밑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어려운 일을 당한 부하는 꼭 챙겼죠. 어느 전직장관이 죽으면 유가족에게 명절 때면 꼭 봉투를 보내곤 했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퇴임한 후 병으로 죽은 장관이 있었는데 박 대통령은 유가족 생계를 위해 상공부에 이야기해 미망인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했죠. 그런데 이 미망인이 말썽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사업도 성실치 못할 뿐더러 상공장관에게 찾아가서「대통령이 도와주라고 했는데 왜말이 많으냐」는 식으로 몰아붙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추석 때인가 내가 집무실에 들어가 박 대통령께 그런 사정을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박 대통령은 얼굴에 노기를 띠면서 쌓아놓은 봉투 중에서 그 미망인 앞으로 해놓은걸 꺼냈어요. 스카치테이프를 뜯고 10만원짜리 수표2장을 빼놓더니 봉투를 찢어버리더군요. 그러면서「정부에서 도와주면 고맙게 생각해 열심히 해야지 그러면 되나」라고 화를 내시더라고요. 박 대통령은 그렇게 봉투 하나 하나에도 나름대로 사려가 있었어요.』
청와대본관2층의「금고Ⅱ」를 관리했던 권숙정 전 비서실장보좌관(전 천안공전학장)은 이런 일화도 소개했다.
『대구사범 동창생 중에 석광수라는 사람이 식도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나한테「즉시 세브란스에 입원시키고 검진결과를 보고해」 라고 하시더군요. 그후 한 달에 한번씩 병세를 보고했죠. 박 대통령은 병원비를 전부 부담했어요. 학교동창이나 군대 친지뿐만 아니라5·16후 반혁명사건으로 몰아 잡아넣었던 사람에게도 촌지를 보내 감격시킨 일도 많았대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감옥살이했던 사람 중에도 박 대통령을 끝까지 원망하는 이는 별로 없잖아요.』
「대통령의 비자금」을 연구하는데 있어 또 한사람 흥미로운 인물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씀씀이의 스타일이나 규모도 솔깃한 비교거리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변천의 역사」인 것 같다.

<박 대통령과 반대>
박 대통령이 유신이전의 혼탁한 상황에서 유신이후 정치자금의 물줄기를 가다듬어 갔다고 하면 전 대통령은 거꾸로 했다. 5공 초기 개혁의지를 다지며 나름대로 허리띠를 졸라 매려했던 전 대통령은 세월이 흐를수록 현실과 관행의 끈적끈적한 손을 뿌리치지 못해 어지러움 속에 빠져들었다는 것이 주변의 얘기다.
결국 임기중반부터 85년 12대 선거 무렵에 가서는『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무척 챙긴다』는 말이 돌았고 이는 나중에 확인되고 있다. 우선 대선용 자금이라며 5백50억원을 넘겨주었다는 부분도 있고 연희동을 떠날 때는 비자금잔액 1백39억원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했다. 일부는 정부가 마련해줬으나 일부는 그쪽에서 내놓았다. 전·현직 청와대소식통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이 정확히 얼마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는『현 정권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5공 초기 전 대통령은 정치자금을 별로 거두지도, 흥청망청 쓰지도 않았다는 증언이 많다.
5공 초대정무수석을 지낸 우병규씨(전 국회사무총장·12대 민정당 의원)는『나는 내가 보고들은 것만 사실대로 이야기하겠다』며 증언에 응했다.
『우선 으레 돈이 많이 들것으로 보이는 선거이야기부터 해봅시다. 81년3월 11대 선거가 있었는데 전 대통령은 당총재 자격으로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헬기로 전라도 나주·순천·해남 등과 경상도 대구·영천·밀양·산청 등지를 돌았죠. 헬기가 떠나기 전 눈치를 보니 격려금을 하나도 준비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가「각하, 가시면 그래도 격려금을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고 슬쩍 이야기를 꺼냈죠. 그랬더니「이 사람 정신나간 사람 아닌가.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말을 하오」라며 언성을 높이더라고요.
전 대통령은「내가 깨끗하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는데 누가 돈 갖다 줄 생각을 하겠오. 게다가 지금 경제가 신음하고 있는데 기업이 나한테 돈을 내면 나중에 전부 국민한테 부담이 돌아갈 것 아닌가」라고 하더군요.
내가「그래도 주는 게 관례인데 청와대 예산에서 얼마라도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자 전 대통령은「전석영 총무수석이 항상 청와대 행사 때 식비도 모자란다고 하는데 어떻게 떼오」라면서 말을 자르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빈손으로 갔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후보들의 불평이 적지 않았다고 해요.』

<선거자금도 안 줘>
당시 후보로 뛰었던 모씨는『선거전 청와대 모임에 갔더니 전 대통령은「나라경제가 심각해 내가 여러분들을 도와줄 수 없다. 지금 집이라도 팔아 고생하면 나중에 경제가 좀 펴졌을 때 내가 봐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기억했다. 물론 민정당 차원에서는 후보들에게 상당한 지원이 있었고 군출신들은 별도로 관리됐으니 알 수 없다.
증언을 모아보면 전 대통령은 초기에 수석비서관들에게 조차 명절촌지를 주지 않았고 김영삼·김종필·이철승씨 등 야권인사에게 주는 인사치레도 인삼으로 대신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85년 12대 총선에 즈음해서는 몇몇 증언처럼「묵직한 돈이 왔다 갔다」했고 장관·비서관·군·외곽단체 등에 전하는 금일봉도 두터워져 있었다고 한다. 친·인척의 치부를 눈감으면서 동시에 자기자신에 대한 제어장치도 한껏 느슨해졌던 모양이다.
전 대통령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5공 청와대의 수석비서관을 지냈던 Z씨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전 대통령에게는 아이러니컬한 면이 있어요. 사실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 많이 다르잖아요. 어렸을 때야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군 생활은 정보부·보안사·청와대 등 권력기관에서 보내 쪼들리는 것을 몰랐고….』

<정권교체 대비>
전 대통령은 더군다나 보스 기질이 있어 하나회 회장을 하면서 아랫사람에 대한 씀씀이가 컸다고 하잖아요. 이렇게 돈 쓰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익숙해져있는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엄격해졌어요. 돈을 당기고 돈을 풀고 하는 것의 부작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경계해보자고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치자금도 자기가 직접 관리한다며 아랫사람들은 일체 손대지 못하게 했잖아요. 수석비서관들도 필요한 돈이 있으면 청와대예산으로 청구하라고 했고요. 요직에 임명되는 사람들에겐 부인 편으로 매달 돈을 부쳤대요. 그 외는 생각 말라는 거였죠.
초기엔 어느 정도 잘 지켜졌다고 생각해요. 나도 호주머니가 항상 비어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전 대통령은 늪과 같이 끌어당기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요. 권력의 안전한 바통터치에도 돈이 필요했고요. 그래서 변해간 깃 아닐까요.』<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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