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실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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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랫동안 서울대 사대에서 인간의 행동과학을 연구하고 강의한 정원식 총리서리의 역저 가운데 『인간과 교육』이란 책이 있다.
그 책의 한 장에는 우리 교육에 있어서의 문화실조 현상에 대한 주목할 연구논문이 실려있다.
그에 의하면 문화실조란 인간발달에서 요구되는 심리적 요소의 결핍,과잉 및 시기적 부적당성에서 일어나는 지적,사회적,인성발달의 부분적 상실,지연 및 왜곡의 현상을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교육이나 문화의 영향에 의해 인간의 지능이 좌우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왔으나 지적발달에 있어 환경적 작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60년대부터 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문화실조 어린이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은 지능이 비교적 낮고 학력이 저하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대부분 지진아 상태에 머물고 있으며 언어적 능력도 모자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매사에 부정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학교생활이 싫다. 성적이 나쁘니 선생님의 귀여움을 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어린이나 모범생들을 보면 시비의 대상이 되고 공격적이 된다. 그들은 지적인 활동을 경시하는 것은 물론 반감을 갖고 곧잘 파괴적 행동으로 나타나기 일쑤다. 그들이 자라 어떻게 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 교육에 있어 문화실조 현상을 누구보다 깊이 우려하고 있는 교육학자 정원식 총리서리가 바로 그 교육현장에서 제자들에게 봉변당했다. 아니 봉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인 반교육·반사회·반인륜적인 폭력에 곤욕을 치렀다.
그는 비록 총리가 되었지만 한사람의 교육자로서 이번 학기에 맡았던 강의를 끝맺기 위해 강단에 섰을 것이다. 관에 몸담으면 금방 변신하고마는 사회풍조를 그는 못마땅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또 그런 풍조가 학생들에게 문화실조 현상을 낳게 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야 어쨌든 학원소요의 현장에 찾아가 강의를 끝낸 그의 행동은 하나의 용기며 책임감의 발로임에 틀림없다.
그런 정총리서리에게 폭력을 가한 학생들은 그를 「전교조를 박살낸 장본인」이라고 매도했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애당초 정총리서리가 교육부장관을 물러나 학기초 강의를 시작할때 그런말을 했어야 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안밟는다」는 우리의 전통적 사제지도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그것은 「인성의 실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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