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차기집권」잡음 불씨 제거/노 대통령,내각제 포기선언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대선후보 경선 언질로 민주계 견제/「광역」대비 야 공격목표 없애기 포석
노태우 대통령이 28일 국정방향을 제시하면서 밝힌 내각제 개헌 포기선언은 그동안 여권내에서 계속 문제가 돼왔던 개헌에 대한 모호함을 일소하고 향후 정치일정을 확실히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치분야의 민심수습 방안으로 나온 이날 발표는 내각제 개헌에 대한 깊은 의구심으로 인해 정치권 전체가 혼미를 거듭해왔던 그동안의 상황을 감안해보면 정국의 가측성을 높였다는 뜻에서 여야 모두에 큰 파급효과를 미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노대통령은 내각제 개헌과 관련한 의혹 등에 대해 국민이 원치않는 한 개헌은 없을 것이라고 모호한 태도를 취해왔던게 사실이다.
3당 합당 때 내각제 개헌이 그 전제였을 뿐 아니라 노대통령의 내각제에 대한 집념이 상당히 집요한 것으로 알려져 내각제 개헌은 언제고 재연할 잠복성 핵심이슈로 간주돼왔었고 야당은 물론 여권내부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주시해왔다. 실제로 청와대와 여당 일각에서는 내각제 개헌의 재시도를 시사하는 움직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민자당의 내각제 합의각서 파동이나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의 마산행과 같은 당내갈등들은 모두 이 「잠재적인 개헌의도」에서 비롯한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 때문에 민자당내의 민정계에서는 내각제 개헌을 둘러싼 눈에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계속돼 왔다. 김영삼 대표나 민주계는 이런 의도를 경계해왔고 이로 인해 당내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광역의회가 끝나면 개헌시도가 본격화될 것이라는게 지배적 관측이었다.
이에 따라 야당은 이를 노대통령 또는 민자당의 장기집권 의도라고 몰아붙여 광역의회의 중심 공격재료로 삼았다.
노대통령의 내각제 포기선언은 그동안 자신이 집착해온 집념의 포기일 뿐 아니라 여권의 내부의혹을 없애고 야당의 공세를 막는 두갈래효과를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대통령은 이날 발표에서 『지금은 국민다수가 내각책임제를 원치 않는 상황』이라고 전제한뒤 『국민 다수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각제 개헌은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추진해서도 안된다는게 일관된 소신』이라며 개헌논의에 쐐기를 박았다.
노대통령은 앞으로 내각제 개헌에 관한 의혹이 있어서는 안되며 이것이 정치쟁점이 돼서도 안된다며 여야는 헌법이 정한 절치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해야한다고 해서 현행 헌법에 의한 국정운영의사를 명백히 했다.
이것은 앞으로 두가지의 문제를 낳게 된다.
첫번째는 민자당의 후계구도에 대한 문제가 보다 명백해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당내후계자 선출문제를 흐려왔었다. 따라서 이번 내각제 불추진 선언으로 대통령 후보선출을 해야되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이 문제와 관련,『당내 문제는 당당하고 공명정대한 민주절차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말로 차기대통령 후보는 경선에 의해 선출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후계구도는 여전히 불명확한 상태로 두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영삼 민자당 대표는 그동안 차기 대권주자로 지명·추대될 것을 기대해 왔다.
노대통령의 말은 이에 대해 명확한 언질을 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미묘한 갈등은 그대로 남게 됐다. 이는 대통령후보의 조기지명이 레임덕현상을 가속화할지 모른다는 청와대의 의구심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특히 노대통령이 내각제 개헌 포기와 차기대통령후보를 경선으로 요약될 수 있는 당내 민주화를 촉구한 배경을 볼 때 그 진통의 정도는 상상을 넘는 것일 수 있다.
노대통령은 김대표가 야당의 노재봉 총리 사퇴를 포함한 전면개각요구에 편승함으로써 내키지 않는 5·26개각을 해야 했던 점과 나아가 김대표 측근들이 이번 개각과정을 통해 청와대를 굴복시킨 것처럼 소문을 퍼뜨리는데 대해선 크게 불쾌해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노대통령의 집권후반의 통치기반을 흔들 위험이 있는 것이며 레임덕 현상을 가속시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었다.
노대통령은 5·26개각을 통해 자신의 향후 정국운영 구상이 강성기조임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한편 차기대통령후보 경선이라는 카드를 통해 민주계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 것으로 풀이된다.
노대통령이 28일 전국무위원과 전민자당 당무위원이 참석하는 확대 당정회의를 소집,지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라는 정치일정이 뚜렷해짐으로써 김영삼 대표측의 활동이 보다 활발해질 것은 분명하며 이에 대한 민정계의 대응도 주목된다.
또 한가지 효과는 광역의회 선거에서 야당의 공세를 무디게 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광역의회선거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예상키 어려우나 광역의회 선거결과에 따라서 정계의 개편같은 결과도 가능하므로 광역의회의 선거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김현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