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의 마지막길(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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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승희야,독재의 총칼이 너의 순결한 몸을 불사르게 했구나. 저승길 동무가 못되고 너를 망월동묘지에 묻기 위해 이자리에 선 나를 용서해다오. 살아남은 우리는 밥을 먹고 살겠지만….』
25일 강경대군 폭행치사사건에 항의,분신자살한 전남대 박승희양(20)의 영결식이 거행된 전남대 5·18광장을 메운 학생·시민 1만여명은 박양의 자취방 친구 최진희양(20)이 울먹이며 낭독하는 조사에 눈시울을 적셨다.
이어 숨진 박양이 평소 즐겨 불렀던 『애국의 길』을 비롯,『5월의 노래』『임을 위한 행진곡』등이 동료학생등의 합창으로 뒤따랐다.
『겨레의 딸 박승희열사』등 구호가 5·18광장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2시간동안 계속된 이날 영결식에서 광주시민들은 꽃다운 나이에 숨져간 박양이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잘못 사용된 공권력이 젊은이를 희생시켰고 5·18광주항쟁에도 불구,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아 사랑하는 제자 박승희양이 분신했습니다. 이제 저세상으로 떠난 박양은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이 이뤄지는 날 다시 살아나 우리와 함께 있을 겁니다.』
오병문 전남대총장은 민주화와 통일을 앞당겨 고인의 한을 풀어주자고 강조했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중태속에서도 어버이날 부모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달라고 부탁했고 스승의 날에는 고등학교 은사들에게 선물을 부탁했던 박양은 자신을 헌신적으로 치료하던 전남대병원 문석진의사(30)에게 허준과 같은 명의가 돼달라며 『동의보감』두권을 선물하는등 의연히 죽음에 대처해왔다.
영구차를 뒤따르는 승희양 아버지 박심배씨(45)의 뒷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슬픔과 한을 남기지 않으면서 죽음에도 의연했던 그 태도와 용기로 왜 마음속에 품었던 뜻을 살아서 펼치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쳤다.<광주=현석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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